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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한국 민주주의 현주소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썩었나 보여주고 싶다"

"형제복지원을 포함한 국가 폭력 문제를 위한 '과거사법'(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법 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일년이 넘어가고 있다. 아무 진전이 없다고 보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런 해석은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바뀌었냐고 답답해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지적은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죽으라는 얘기다. 왜 꼭 누군가 분신을 해야, 사람이 죽어야 진정성 있는 운동으로 평가 받는가? 우리를 피해생존자라는 타이틀로 불리는 것도 살아남아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저희보고 죽으라고 한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저는 살고 싶다.  

2012년 책 <살아남은 아이>(<살아남은 아이-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 한종오.전규찬.박래군 지음)를 통해 내가 피해 증언을 시작하면서 많은 피해 당사자들이 형제복지원의 참상에 대해 증언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피해 당사자들이 진정성을 갖고 당사자 운동에 나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썩었다는 얘기다. 그 썩음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너무 공고해서 변하지를 않는다. 형제복지원에 끌려가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던 우리가 이렇게 싸우면서 하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국회 앞 농성장에서 더위와 추위와 모멸감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는 19일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주최로 열린 '형제복지원의 사회사와 소수자 과거청산의 과제' 토론회에서 형제복지원 관련 입법 문제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현 시점에서의 소회를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자 유족회와 형제복지원·선감학원 피해생존자 등 국가폭력의 피해자 70여 명이 '과거사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해당 법안은 별다른 쟁점도 없이 국회에서 3년째 계류 중인데, 이번 주에 네 차례 예정된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안건에서 누락되어 심사조차 되지 않을 예정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6일 국회 앞 노숙농성 1년을 맞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강추위를 기록했던 작년 못지 않게 추울 것으로 예고된 올해 겨울을 또다시 거리에서 지내야 하나 걱정이 커져만 가고 있다. 


▲ 이날 서울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한종선 피해생존자모임 대표(오른쪽)와 박준영 변호사. ⓒ프레시안(전홍기혜)


"검찰 비상상고, 검찰총장 사과 검토 중" 

검찰 과거사위원회 위원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이날 "곧 검찰이 비상상고를 할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총장이 사과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면서 검찰의 비상상고가 국회의 법안 처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비상상고를 청구한다는 것은 감금의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피해를 인정받는 것이다. 검찰이 이렇게 비상상고를 하면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여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법리적으로만 보면 이전에도 검찰의 비상상고가 어렵지 않았지만, 검찰은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피해생존자들이 국회 앞에서 1년 가까이 농성을 하고, 또 검찰 간부들이 <살아남은 아이> 책을 직접 읽으면서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피해당사자들의 운동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을 이용하면 국회에서 관련법 처리가 왜 안 되겠나." 


박 변호사는 특히 조사 과정에서 당시 '부랑인'으로 낙인 찍혀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던 빈곤층들이 최소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검찰에 의해 처음 조사될 당시 형제복지원에 2년 6개월 동안 수용됐던 사람의 진정서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박종철(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피해자) 군은 서울대생이고, 우리는 부랑인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권리는 평등하지 않냐.' 이 진정서를 쓴 분을 이번에 검찰 과거사위원으로 조사하면서 30년 후에 만났다. 그 분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는 것이었다.  


과거사위원으로 형제복지원 기록물 22권을 보게 됐다. 그 중 울주작업장 사건 관련 기록을 보면 피해자들의 인적사항도 특정되지 않은 채 기록되어 있었다. 주민번호 뒷자리가 없거나, 이름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 피해생존자들은 기록에서도 소외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조사하면서 피해생존자 50명을 만났는데, 이들의 삶이, 사연이 너무 기구했다. 이처럼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 사람들의 삶이 많이 조명 받았으면 좋겠고, 이런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힘이 법과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형제복지원, 한국 사회의 착시 현상을 드러내주고 있다"


송소연 진실의힘 이사는 "국회 앞 농성이 일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안될 수 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게 우리 사회의 착시 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우리 스스로가 우리 사회가 인권이 보장된, 민주주의가 발전한 사회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송 이사는 1970-80년대 간첩조작사건 등 다른 과거사 관련 사건도 2010년대가 되어서야 재심에서 이기고 명예회복이 가능했다며, 이런 소수자 인권 문제가 한국 민주주의의 정확한 좌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형제복지원 문제에 대해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관심과 동참을 통해 ‘지체된 응답’은 이뤄졌지만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에서 정치적 응답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과연 정권이 변화됐다 치더라도 과거 청산의 법적 청산을 책임을 질만큼 문제의식이 깊을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김민환 한신대 교수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관련법이 만들어지더라도 끝나지 않는 지점, 사회적으로 의미화되고, 다시 재의미화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법적인 문제 해결보다 사회적 재의미화 과정이 훨씬 지난하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특수성은 과거사 사건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나누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당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가해자가 아니었냐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하는 사안이 바로 이 사건이다"라면서 반드시 사회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윤정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도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의 책임의 문제로 법적인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의미화시킬 것인가의 이중의 과제가 있다"며 "다른 과거사 사건에서 국가주의적 방식으로 배.보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사회적인 의미가 되지 않고 그분들이 겪었던 배제의 역사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우리 사회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주제다"라고 이런 문제의식에 동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