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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중국은 아직 '제국'을 꿈꾸지 않는다" (2014.8.24)

[인터뷰] <4생결단 코리아> 저자 박정 새정치연합 국제위원장

 

다짜고짜 물었다. "중국에 대해 너무 우호적인 시각 아닌가요?"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오히려 편향됐다고 생각합니다. '내재적 관점'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죠. 하지만 우리 외교당국만 봐도 지나치게 미국 중심입니다. 미국 유학을 갔다 온 학자와 지식인들은 넘쳐나지만, 중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그에 비해 소수입니다. 

미국의 시각에 편향된 대표적인 담론이 'G2 시대'에 대한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미국과 대결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 국민 뿐 아니라 정부 관료, 학자들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중국이 20-40년 후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건 총경제규모(GDP)에서만 그렇습니다. 지금 경제성장 속도를 유지하더라도 1인당 GNP는 2100년이 돼도 미국을 쫓아갈 수 없습니다. 중국을 미국과 다른 정치체제와 발전경로를 갖고 있습니다."

박정 새정치민주연합 국제위원장은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그는 중국에서 국제관계학(외교)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박 위원장은 최근 동북아 관계를 다룬 <4생결단 코리아>(책보세 펴냄)를 냈다. 어째 이름이 익숙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사람이 맞다. '박정 어학원' 원장이다. 영어교육 전문가가 중국 전문가가 된 셈이다. 


그는 2005년부터 중국에서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학원 사업 확장을 타진해볼 겸 건너간 중국에서 오히려 공부가 본업이 됐다. 2004년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것도 중국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자고 마음먹게 된 배경이다. 

"동북아에서 중미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패권주의를 추구함으로써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것이다? 중국이 경제 성장에 따라 서구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이다? 모두 '미국식 사고'입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쟁에 따른 격차와 불균형이 합리화되는 측면이 있지만, 사회주의는 체제 정당성이 걸린 문제입니다. 확대되어온 빈부격차와 도농간 차별 문제 등에 대해 중국 정부는 경제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일'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아직은 '패권주의'를 꿈꿀 여력이 없단 얘기입니다."

중국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로 박 위원장은 중국 정치에 대한 오해를 지적했다. '중국이 이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뤘으니 이제 곧 직접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로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소요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식의 인식이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중국은 북한처럼 왕정체제와 비슷하게 권력승계가 일어나는 사회주의 국가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직 최고지도자들의 합의와 추대에 의해 차세대 지도자가 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1당 체제'에서 권력 독점과 폐쇄성, 이에 따른 부정부패가 불가피하지 않을까? 

"시진핑 주석은 지역 간부급에서 시작해 국가 주석에 이르기까지 16단계를 거쳤고, 그 기간이 40년입니다. 한 명의 공산당원이 말단에서 최고위직인 정부급(장관급)에 올라갈 확률은 1만400분의 1, 평균기간은 23년입니다.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자체 검증이 이뤄지는 시스템이죠.

또 1인이 아니라 지역성과 전문성에 따라 적절히 안배한 집단지도체제입니다. 현 5세대 지도부들의 경우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외교와 국방을 총지휘하고, 리커창이 총리로 경제와 행정을 총괄하는 식입니다. 

내부 견제의 사례로 최근 태자당(중국 공산당 혁명원로나 고위간부 자손들로 이뤄진 일종의 정치계파)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던 보시라이가 부패로 실각하고 무기직영형을 선고 받은 일을 들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시진핑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략적인 차원이었다고 보기도 하는데, 어쨌든 '정풍' 운동 차원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현재까진 국민들의 '정치적 불만'이 크게 불거지진 않고 있습니다."

박 위원장이 중국에 대한 '내재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은, 4강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항상 그래왔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외교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질서를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가운데 분단국인 한국은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우리 발언권과 연관된 문제입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지나친 대미 중심 외교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됐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MB정부에 비해 중국과 외교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잘하는 것은 없습니다. 정상회담만 했을 뿐이죠. 그 이후 후속 조치도 없었습니다.  

중국은 동남아시아는 경제를 통해 우군을 만들려고 하고 있고, 파키스탄 쪽은 자원외교, 아프리카는 지원외교 형태로 외교의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 정치와 안보를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한국이 이용해야 합니다."


박 위원장이 제안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장단국제평화공단'이다. 개성공단 이외에 남한에서 가장 인접한 파주시 장단면 일대에 남북 공동 운영의 국제산업단지를 추가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개성공단도 제대로 운영이 안되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 더 만드냐구요? 기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주로 남북간 긴장완화에 초점을 둔 것이라면, 새로운 국제평화공단은 남북이 모두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입니다. 또 개성공단이 국제사회가 참여하지 않은 공단이어서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면 2013년처럼 사업에 참여한 기업인들이 곧바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장단공단은 일본을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고, 북한은 일제강점기 배상금 문제를 마무리하여 경제 회복의 동력으로 삼고 싶어합니다. 남북간에는 개성공단이 운영되고 있고, 북한은 동해안에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중국, 러시아와 더불어 진행시켜나가고 있는 가운데 일본만 소외된 형국입니다. 한국 입장에서도 일본을 동북아 무대로 끌어내는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

물론 아직은 '정책 제안'에 불과하다. 박 위원장은 야당이 대북정책의 기본 노선인 '평화, 화해, 협력'에 기반한 좀더 적극적인 실천적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이 보수진영의 '종북 비판'에 움추려 들어서 '햇볕정책'을 뛰어넘는 실천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게으르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그는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 비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천적 대안을 만들어야 국민들에게 수권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홈런칠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중국 같은 대국도 50년을 내다보고 외교 정책을 고민합니다. 4강의 틈바구니에서 분단국 한국이 살아남는 일은 '한방'이 아니라 꾸준한 외교적 노력과 대안 모색이 아닐까요." 

 

(이 기사는 이명선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