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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창중, 손석희…비루한 언론의 현실(2013.5.13)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대통령 취임 후 첫 해외 순방, 그것도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 대변인의 '성 추문'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건 자체도 '진흙탕' 그 자체인데, 이것도 부족해 윤창중 전 대변인이 지난 11일 기자 회견을 자청해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나서면서 사건은 더 커졌다. 이 '뻔뻔한' 기자 회견을 통해 다시 한번 윤 전 대변인의 '함량'이 확인됐을 뿐 아니라 '청와대 귀국 지시' 의혹을 폭로하면서 불똥은 청와대 전체로 튀었다.

성추행 혐의 등을 부인한 것은 청와대가 귀국 직후 윤 전 대변인을 자체 조사하는 과정에서 '엉덩이를 만졌고,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 사실에 대해 시인했다는 점을 공개하면서 일단락 됐지만, 청와대 개입 여부는 여전히 남겨진 문제다. 윤 전 대변인 주장대로 청와대의 '귀국 지시'가 사실이라면,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을 방조하고 도주를 도운 셈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능멸하고 대통령의 눈을 가리는 행위를 한 자가 윤 전 대변인 한 사람이 아니라 '윗선'에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 회의에서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밝혔지만, 이로 매듭지을 일은 아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청문회가 됐든, 어떤 과정을 거쳐서든 제기된 의혹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관련 기사 : 朴대통령, 윤창중 사태 사과…"美 수사에 적극 협조")

▲ <문화일보>에 재직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그의 인선은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입길에 오르내렸다. 그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성추행 의혹'을 부인했지만, 이후 '엉덩이를 만졌고,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청와대 진술이 공개되면서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연합뉴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미국의 독립 언론인 이지 스톤(I. F. Stone, 1907~1989년)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쟁이들이 꽉 잡고 있다. 이들이 하는 말은 단 하나도 믿어선 안 된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관리들이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런 나라에는 곧 재앙이 닥친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뛰어든 계기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이 자작극일 가능성을 최초로 제기했던 스톤은 미국에서 진보적 독립 언론인의 롤 모델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뉴욕포스트>, <네이션> 등 기존 언론에서 일하던 그는 1953년 1인 미디어 <I. F. 스톤 위클리>를 찍어 내기 시작했다.

혼자 취재하고 자신의 집에서 편집해 주간지를 찍어내고, 우체국에서 신문 발송을 직접 했다. 기자실, 기자단, 기자 회견장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고위 소식통을 두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숱한 특종을 냈다. 초기엔 많지 않았지만 추후 발행부수가 7만 부나 됐던 <I. F. 스톤 위클리>는 초기부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버트런드 러셀, 엘리너 루스벨트 등이 구독자였다.

그는 좋은 직장을 모두 내던지고 왜 자신만의 신문을 만들려 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억압 받는 자들에게 약간의 위안이라도 주기 위해, 내가 직접 본 그대로의 진실을 쓰기 위해, 내 자신의 무능력에 의한 한계를 빼놓고는 그 밖의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충동을 빼놓고는 그 어떤 주인도 따르지 않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진정한 언론인이란 어때야 하는가 하는 나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밖에 바랄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관련 기사 : I. F. 스톤을 기리며)

'윤창중 성 추문'을 보면서 뜬금없이 스톤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결정한 지난 6일 이후 일주일을 뒤흔들었던 뉴스들이 공교롭게 언론, 언론인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도 <문화일보> 등에 재직했던 언론인 출신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발탁했을 당시에도 큰 논란을 불러왔던 전형적인 '폴리널리스트'다. 또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중앙일보> 출신),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한국일보>, <조선일보> 출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동아일보> 출신) 등 이명박 정부에서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던 인사들과도 다른 점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을 글로 옮긴 '독설가'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선 변희재 씨와 공통점이 많다고도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변 씨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편을 들어 피해 여성 등에게 막말을 쏟아내다가 청와대 조사 과정이 공개되면서 망신을 당했다. 윤 전 대변인 사건은 양심과 철학 없는 언론과 언론인이 무작정 권력을 추구하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문화방송>(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간판이었던 손석희 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의 '종편행'도 충격적인 뉴스였다. 일차적으론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지만, 그 선택에 깔린 함의는 결코 적지 않다. 손석희 전 교수가 30년간 몸 담았던 MBC가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프로젝트'를 통해 얼마나 망가졌는지, 김재철 전 사장 등 그에 충실하게 복무한 언론인들은 후배 언론인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는지, 김재철 전 사장의 후임으로 김종국 사장이 낙점됐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MBC 안팎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더 나아가 손 전 교수가 내세운 "종편이 현실이 됐다"는 명분 역시 가볍지 않은 얘기다. '현실이 된 종편'이 가뜩이나 자본과 정치 권력에 취약한 대한민국 언론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우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종편 택한 손석희? 손석희 삼킨 종편!)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 실험에 대해 종합 일간지에선 처음으로 "누구도 가지 않은 길로 어렵게 첫 발을 뗀 프레시안의 용기를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칼럼을 낸 <한국일보>의 현재 사태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59년 전통의 기자 사관학교'로 불리던 언론이 사주 일가의 욕심으로 망가지고 있다. 더욱이 물의를 일으킨 그 사주는 회사 측에 의해 부당하게 보직 해임된 이영성 편집국장이 호소했듯이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긴 故 장기영 창업주의 아들이라니.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비루한 처신을 거부하는 기자 정신"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한국일보> 기자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보내고 싶다. 언론인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유약한 생활인일지 몰라도, 이들이 집단으로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이명박 정권에서 이미 MBC, KBS, YTN 등 언론 파업을 통해 증명됐다.

<프레시안>의 언론 협동조합 실험은 이런 현실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세계사적으로도 처음 있는 일인지라 성공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내부적인 불안감도 작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마음은 모두 똑같다. 선배, 동료 언론인들이 보여준 사명을 좇을 것이며,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당당할 것이다. 지난 1주일 <프레시안>의 실험을 지지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