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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이대 나온 부녀회장이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연은?(2012.3.11)

녹색당. 한국에서도 탈원전 등 녹색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정당이 지난 4일 탄생했다. 내달 11일 총선에서도 2명의 지역구 후보를 낸다. 그중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경북 지역에 출마하는 박혜령(43) 후보를 만났다.

그는 공교롭게도 요즘 민주통합당에서 심심찮게 말이 나오는 이화여대를 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 "제대로된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는 남편의 뜻에 동의해 96년 귀농했다. 10여년 넘게 농민으로 살아온 그가 선거에 출마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핵 발전소 때문이다. 그의 지역구는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이다. 지난해 말 정부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 후보지로 선정한 영덕과 현재 원전이 가동 중인 울진이 모두 포함돼 있다. 1998년, 2003년, 2005년 세 차례나 방사능폐기물처리장(방폐장) 건립을 주민들의 힘으로 막아낸 경험도 있다. 9일 국회에서 만난 박 후보는 녹색당 후보답게 여느 정치인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질문에 다소 수줍은 듯, 그러나 또박또박 답했다.

그는 선거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냐는 질문에 웃으며 "부녀회장으로 있는 영덕에서는 몰표를 받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 이 지역 국회의원, 도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은 여당 일색이다. 박 후보는 "무소속도 나왔다가 (당선되면) 다시 새누리당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런 지역에서 녹색당 후보로 나서게 된 계기는 이렇다.

"(지난 연말 신규원전 후보지 선정 이후) 2005년에 방폐장 반대 투쟁이 있었던 곳이라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조금만 힘을 보태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한 명도 얘기를 안 하시더라. 단체들도 입장을 얘기하지 않고, 전화도 안 받았다.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3번의 투쟁이 있은 뒤 3선인 현 군수가 주민들의 자치활동이나 의견수렴 과정의 맥을 끊어놓아 단체가 와해되기도 하고 주민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할 수 없는 지역 상황을 만들어 놨다."

원전 유치 찬성하는 군수의 교묘한 탄압

"1998년과 2003년 방폐장 건설 반대는 당시 군수부터 반대했고 주민들의 반대를 힘으로 가지고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5년에는 군수가 방폐장을 유치하려 했다. 주민들은 이런 인식을 못한 상태에서 기존의 반대 입장 연장선에서 싸우게 됐다. 그러나 탄압이 심할 거라는 예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유치 반대운동에 대해 행정 당국은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동참하는 농민들은 축사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든지 하는 절차상의 불이익을 줘서 고통을 주고, 가게를 하시는 분들은 위생검열이나 무자료 거래(장부상에 기재돼있지 않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 등 걸면 걸리는 게 너무 많아 그런 것으로 몇천만 원 벌금을 매기고" 하는 등의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일이 쌓이다 보니 압도적이었던 '반대' 여론이 표면적으론 '찬성'으로 돌아섰다.

선거 출마 이전부터 원전 유치 반대 운동을 이끌어온 그는 "공개적으로는 말도 못 하시고 귓속말로 속닥속닥 자기들의 분노를 얘기하며 '꼭 이겼으면 좋겠다'고 하고 가신다"며 지역 민심을 전했다. '영덕 몰표'를 장담한 데는 이같은 근거가 있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 지인들 전화변호 명단을 통째로 넘겨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들 반응을 보면 생각보다 (탈핵 주장에 대한) 수용이 빠르셔서 놀라고 있다. 농민들에게도 빠른 반응이 온다. (핵발전소 백지화를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을 할 때는 답이 없어서 벽처럼 느껴졌는데 (…) 그만큼 저를 '빽'으로 생각하고 얘기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괜히 걱정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웃음)

▲4.11 총선에서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지역구에 출사표를 낸 박혜령 녹색당 예비후보 ⓒ프레시안(최형락)


'이대 나온 여자'가 부녀회장이 된 사연은…

스스로를 농민으로 부르는 박 후보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1996년 귀농을 결심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금도 7000평의 밭에서 담배와 배추, 고추 등을 짓고 있는 그는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녹색당 후보인 그이지만 "유기농으로만 농사를 짓기는 힘들다"며 어려움을 솔직히 토로하기도 했다. 생태형 농업과 관련된 고민도 털어놓았다. 동네를 뒤덮은 수십 동의 비닐하우스 농사도 알고 보면 "앞으로 남고 뒤로 빚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농사를 짓든 큰 농사를 짓든 농민들은 힘들다"며 "(지역 농민들은) 간절히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신다"고 전했다. 진보정당 후보들의 약력에서 흔한 편인 '○○투쟁위원회 위원장' 등보다 더욱 눈길을 잡아끄는 박 후보의 '부녀회장' 경력도 농민으로서의 삶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갈수기가 왔다. 동네 상수도가 끊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7년이다. 가뭄이 전국적으로 심할 때였고 물이 없는 상황인데 관에서는 대책을 세워주지 않았다. 개개인이 옆 동네에 가서 '말(斗)통'으로 물을 길어야 하는데 (행정당국은) 대책도 없고, 항의해도 묵묵부답이고, 탄원서를 걷어 내도 끄덕도 않았다."

결국 주민들은 시위를 벌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 마을에서 전체가 나가 시위를 벌인 건 군청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해 영양군에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도 법적 소송으로 대응하며 맞섰다. 그는 "여론 수렴도 안 되고 편법으로 공사가 진행됐다"면서 "대량의 산림이 훼손되는데도 법적 절차까지 어겨가며 (공사가) 진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녹색당과의 인연

이 와중에 핵발전소 부지 후보지로 영덕이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이건 풍력단지나 한 지역의 물 문제와는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그래서 대책위원회를 꾸렸지만 관의 방해는 집요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발족식을 하는 첫날, 수십 명의 공무원이 사진도 찍어가고 지역 주민 누가 참여했는지 확인하는, 말하자면 사찰"이 있었다.

이런 중에 이뤄진 녹색당과의 만남에 대해 그는 '인연'이란 표현을 쓰며 "당을 통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의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총선 출마 제안을 받은 그는 고민 끝에 출마를 수락했다. 정치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오히려 활동이 위축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핵 찬성론자인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면 여기 민심이 핵발전소 찬성으로 규정될까 걱정을 많이 했다"는 이유에서다.

박 후보는 "새누리당에서는 (이 지역구에) 예비후부가 11명이나 나와 활동했다"면서 "울진·영덕 등 현안 지역에, 핵에 찬성하는 당에서 11명이나 (예비후보를) 내서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은 주민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주민들도 '우리 지역을 얼마나 얕보면 후보를 이렇게 내느냐'하는 반응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또 그는 민주통합당에도 핵 에너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후보와 같은 지역구에 공천된 민주당 후보 정일순 전 군의회 의장은 지난 2005년 울진군 의원이던 시절 핵폐기장 유치에 찬성했던 인물이라고 녹색당 등 진보정당 후보들은 비난한다.

▲박혜령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핵마피아들의 결정, 주민들에게 거부권 있다"

영덕 지역 주민들 역시 핵의 위험성은 체감하고 있다. 특히 방폐장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고 '고준위폐기물 처리장도 들어올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 박 후보는 "핵발전소는 경제성이나 생태적인 면에서 봤을 때 반드시 폐기돼야 할 에너지"라고 강조했다.

현재 지자체 등 당국에서 '핵 관련 시설을 유치하면 지역 경기 활성화에 보탬이 된다'고 하고 있는데 대해 박 후보는 "인구도 줄고 젊은 층이 없어 상권이 붕괴되는 지역 상황을 악용해서 핵발전소를 유치하면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얘기로 현혹하고 있다"면서 울진 등 이미 원전이 들어선 지역의 사례를 보면 경기 부양 효과는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정부와 '핵 마피아'들의 논리는 더 이상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 지금 힘을 가지고 결정권을 가진 이들은 그들이지만, 그들에 대해 진정한 거부권을 가진 사람들이 주민·국민들이다. 결국 정당성을 가진 사람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박 후보의 확신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의지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그의 딸도 그에게는 "동지 같은 사람"이다. 박 후보의 딸은 체르노빌 사태와 관련된 사진을 보고는 너무 충격을 받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울음을 터뜨린 경험 이후, '죽기 싫은 초딩들의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나름의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어려운 핵발전 관련 내용을 아이들의 언어로 풀어낸 유인물을 학교에 들고 가 친구들을 한 사람씩 동참시킨 딸의 인터넷 카페는 '중딩'들도 참여하는 카페로 진화해 현재 29명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그는 딸을 보고 "좀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겠다, 꼭 단번에 하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하루빨리 뜻을 모아 탈핵을 선언함으로써 아이들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물려주고 싶고, (이들에게) 덜 고생스러운 청년기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기사는 곽재훈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