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묻다] 구세진 인하대 교수-김윤철 경희대 교수 대담 ②
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카르텔 정당"의 폐해로 유권자들이 느끼는 정치적 효능감이 최저 수준을 찍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표 차는 역대 최소(25만 표)를 기록했지만, 선거 기간 내내 정책적 차이보다는 후보들에 대한 네거티브만 난무했다.
프레시안 신년 대담에서 구세진 인하대 교수는 "한국 정치는 극도의 양당제와 대통령제가 결합하면서 나온 폐단이 상당하다. 심각한 제도적 결함이라고 보고 있다"고 평했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합의 정치를 추구하는 양당제의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양 정당의 이념적 거리가 멀지 않을 때인데 한국의 거대 양당은 이념적 거리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거리가 상당하고 시민사회와 괴리된 채 감정싸움까지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련 기사 : "욕망에 솔직한 보수 윤석열, 한국 체제의 산물이다")
이처럼 정당과 의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은 불안하기만 하다. 3대 개혁과제 중 하나인 '노동 개혁'은 국정원을 앞세워 민주노총을 압수수색하는 등 "노조 때려잡기"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의 격화, 인플레이션 등 급변하고 있는 국제 정세 속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도 위험해 보인다. 김 교수는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배후인 "극우·반공·냉전 보수들의 '큰 그림'"에 대해 걱정했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것도 군사적인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지난 연말부터 핵무장론을 포함한 대북강경론을 쏟아내는 등 윤석열 정권은 자신들이 통제가능하다는 설정 속에 무력 충돌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분단 이후 남한에서 '군사화' 담론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굉장히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동력이 부족한 윤 대통령은 신년 초부터 "유신 체제와 5공화국에서 이미 실시"됐던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하며 정치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를 유권자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개혁을 추동할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구세진 교수는 "정당이 사회적 이해관계가 결집된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등 제 기능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목소리는 직접 행동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다. 이를 '열광과 실망의 사이클'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며 시민들의 직접 행동에서 단초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윤철 교수는 "더 성숙하고 더 나은 정치와 사회와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기성 질서 안에서 좋고 나쁨과 옳고 그름만을 따지며 맴도는 게 아니라, 이탈을 통한 대안적 삶의 구현과 현실 개선의 효과를 이룬 사례 등을 적극 발굴하고 알려야 한다"며 긴 호흡을 갖고 "생활정치의 새로운 실험"을 모색할 것을 제안했다.
다음은 대담 후반부 주요 내용이다.
"尹대통령, 독재 시절 제도인 중대선거구제 제안…진정성 없다"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이 <조선일보>와 한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건데, 어떻게 보고 있나?
김윤철 : <경향신문>이 진행한 신년 여론조사 결과, 한국 사회에서 개혁이 가장 시급한 분야로는 '정치'가 꼽혔다. 특히 연령과 성별, 지지 정당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정치개혁이 가장 시급하다고 답했다. 한국 사회에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열망이 선거구제를 바꾸는 데 있을까?
만약 '정치개혁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선거구제 개편인가? 아니면, 민생을 위한 세력 간 타협인가? 또 그런 세력의 형성을 위한 다당제 구성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잘 조정하고 타협해서 민생을 돌보라'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시민들이 열망하는 정치개혁의 핵심은 정치 없는 정치 효능감에 대한 요구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것 같은 무슨 선거구제 개편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신년부터 정치개혁 이슈를 던진 배경에는, 야권이 지난 연말에 들고나온 정치개혁 의제를 덮어버리고 선수 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동시에 중대선거구제가 국회 의석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제안은 아니라고 본다.
* <경향신문>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매트릭스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30~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에서 어떤 분야의 개혁이 가장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정치'라고 응답한 사람이 43.4%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제(20.6%), 노동(14.2%), 교육·연금(각 8.8%) 순이었다.
또 '2023년 정부가 가장 주력해야 할 민생경제 분야'를 물었더니, 34.3%가 '물가 안정'을 꼽았다. 다음으로는, 경제성장(15.8%), 사회적 약자 복지확대(13.0%), 부동산시장 안정(9.8%), 고금리 규제(7.6%), 가계대출(6.1%) 순이었다. 편집자.
해당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은 10.3%다. 조사 결과는 소수점 둘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값으로, 항목별 합산치는 총계와 다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편집자
구세진 : 중대선거구제는 유신 체제와 제5공화국에서 이미 실시된 제도다. 그 당시 독재를 하던 여당이 한 석이라도 더 가져가기 위한 전략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했다.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지금과 같은 소선거구제로 바뀌었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선거를 대상으로 3~5인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한 결과, 지역 30곳 중 26곳에서 거대 양당 후보가 선출돼 총 109명의 의석 중 105석을 양당이 가져갔다. 양당 독식 구도가 전혀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고민과, 양당이 당시 선거 직전까지 선거구 획정을 미적거린 점 및 복수 공천의 문제에 대한 고민 등이 모두 생략된 채로 갑자기 툭 던져진 '진영 간 양극화 해소와 다양한 국민의 이해를 잘 대변할 수 있도록 중대선거구제를 중앙에 도입하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제안에서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 대통령으로, 정치인으로 개혁 아젠다를 좀 더 깊이 있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 좋겠다.
사실 양당제가 자리 잡은 민주주의국가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드물게도, 완전한 양당제에 가까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무분별한 군소정당의 난립'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게 사회에 존재한다. 다당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독재 정권 때부터 고착된 사고가 아닌가 생각한다.
양당제와 결합된 대통령제에서는…"도저히 못 해 먹겠다"
프레시안 : 한국 의회가 사실상 양당제라고 했다. 대표적인 양당제 국가인 미국의 경우, 정치적 양극화가 아무리 극대화됐다고 해도 합의 정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입법부가 아예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양극화가 심각하다.
김윤철 : 양당제에서 합의정치가 가능하려면 양 정당의 이념적 거리가 멀지 않을 때다. 그러나 한국의 거대 양당은 이념적 거리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거리가 상당하다. 또 시민사회와 괴리된 채 감정싸움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대 정당이 자기 살을 떼 주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꿀 리는 만무하다. 바뀐다고 한들 그나마 개혁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 증대는 한 자릿수에 그치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도 성장도 어렵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한다 해도 양대 정당 틈바구니에서 다시 통합되고 분화됐다 또 통합되기를 반복하지 않을까?
유권자들은 '어떻게든 양극화된 정치 환경에서 최악은 피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양대 정당 중에서 가능한 한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양당을 어떻게 좋게 만들까' 하는 논의가 훨씬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그간 다당제 형성을 위한 선거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었던 노선에서 양당이 지배하는 현실과 그 현실에서 합리적 선택을 고민하는 유권자의 특성을 고려해 그동안 안 해봤던 실험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논의가 필요하다.
구세진 : 한국 정치에 애정을 갖고 있는 학자들도 '이젠 도저히 못 해 먹겠다'고 한탄한다. 제도가 좋아도 그걸 실천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한국 정치는 극도의 양당제와 대통령제가 결합하면서 나온 폐단이 상당하다. 심각한 제도적 결함이라고 보고 있다.
대통령제의 경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승자독식의 문제 외에도, 책임 정치도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지금처럼 야당이 의회의 다수당일 때는 대통령이 의회를 통해 자신의 아젠다를 입법화하기도 어렵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말은 많지만,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또 정치 문법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 같은 아웃사이더가 정치의 최고 위치에 오르기도 너무 쉽다. 한편, 의회제나 준대통령제 민주주의가 독재화될 때 흔히 대통령제가 대안으로 채택된다. 튀르키예, 러시아 등. 이는 대통령제가 권력의 집중과 남용이 수월한 제도라는 것을 시사한다.
비교정치학적으로 봤을 때 안정된 대통령제 민주주의는 극히 드물다. '대통령제의 원조'라고 하는 미국도 최근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아노크라시(Anocracy)', 즉 민주주의와 독재 국가의 중간 단계로 분류되고 있다.
반면, 내각제는 합의제 민주주의 제도다. 협치를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내각제하에서는 아웃사이더가 행정 수반이 되는, 그런 우려는 거의 없다. 또 각 행정부처나 의원들이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줄을 서는 일이 없다. 대신 입법부와 행정부가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애를 쓰거나 의원들이 정당이라는 하나의 집단에 보다 신경을 쓰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김윤철 : 내각제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실험이다. 정치학계에서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합의의 폭이 넓어졌다. 문제는 개헌인데, 개헌을 위한 시민사회적인 에너지가 있을까? 과연 지금의 정당들이 개헌을 위한 에너지를 결집시킬 수 있을까? 구세진 교수 말처럼 제도가 좋아도 그걸 도입하고 잘 운영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국민들 입장에서도, 개헌을 통한 선거제도 개혁으로 얻을 게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민생과 정치개혁 의제가 따로 놀고 있다. 과거에는 진보정당이 등장하면 '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2000년대 초에 이루어진 현행 1인2표 정당명부제 도입은 그래서 가능했다. 지역주의 및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낙천· 낙선 운동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대를 받고 열정을 발산케 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사회 에너지, '피해대중'에서 찾아야…"
프레시안 : 개헌이든, 개혁이든, 시민사회적 에너지도 없고 정치권이 그런 에너지를 모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김윤철 : 시민사회적 에너지가 지금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열광적 지지의 표출 같은 팬덤정치로 소모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민사회적 흐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조봉암 선생이 '피해대중'이라는 말을 했는데, 지금 한국 사회의 '피해대중'은 바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유족, 그리고 중대재해 유족 등이다. 생명과 안전과 노동존중과 같은 가치를 소홀히 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그러나 지금 사회 활동성(activity)이 가장 높은 존재다. 여기서 새로운 정치와 사회와 국가를 요구하는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 이에 더해 로컬 파티, 마을 만들기 등 한때 '생활정치'라고 부른 영역에서도 새로운 흐름을 찾아야 한다. 빛나지도 주목받지도 못했으나 꾸준히 실험이 진행되어왔고, 새로운 정치적, 사회실천적 주체들이 '발견'되어왔다.
이와 함께 '개딸' 현상이나 '맘카페' 같은 커뮤니티가 갖고 있는 긍정성과 자발성을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맘카페같은 커뮤니티는 늘 정치적이지 않지만, 또 늘 정치적일 필요는 뭐가 있나. 그들의 일상성과 실천성에 주목하면 정치가 무엇인지, 우선해야 할 의제가 무엇인지, 해법을 어떻게 도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기성 정치권의 각성이나 제도가 개선될 가능성은 제로다. 따라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과 다른 시간 감각과 관점과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 다음은 누가 되어야 한다'와 같은 주기적 선거와 '정권' 차원을 기준으로 한 단기적인 관점보다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 같이 정치적, 사회적 '질서'의 차원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이에 기초해서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그림을 그리자고 말하고 싶다.
구세진 : 최근에 유럽 정치 쪽에서 나온 연구들을 보면, 영국의 경우 당원 모임이나 정당 지지자 모임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나. 저녁 5~6시쯤 펍(pub)에 가서 맥주 한 잔씩 하면서 꼭 정치적이지만은 않은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는…. 정당 조직이 풀뿌리 시민들과 연계하는 이런 노력을은 상당한 열매도 맺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결과 이제는 정당에 중년 아저씨들만 남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식 모임도 하고 티타임도 하는 등 모임의 성격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국고보조금에 의지한 '카르텔 정당', 민주주의를 갉아 먹다"
프레시안 : 사회 전반적으로 정치에 냉담해져 있다. 심지어 세대 불문 '정치 혐오'가 하나의 장르가 됐다. 이유가 뭘까?
구세진 : 기존 주요 정당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두 정당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니다. 오히려 이념적 또는 정책적인 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갈등이 분출되는 것 같다.
정당학에서는 이를 '카르텔 정당'이라고 하는데, 정당이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 보조금에 의지하면서 시민사회와 유리되고 더 이상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게 된…. 그러면서 정당이 시민사회 영역이 아닌 국가 내부로 이동해 가는 현상을 카르텔 정당이라고 한다.
정당과 국가가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면, 정당은 더 이상 민주적 경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둘러싼 경쟁을 하지 않는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일이 된다. 그렇다 보니, 정당 간 정책적 차이가 불분명해진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간 이념적 차이가 없다'는 말은 이런 의미다. 지난해 대선만 해도, 각 정당을 대표하는 후보 간에 대다수 유권자들이 기억할 만한 의미 있는 정책적 차이가 있었나? 2012년 대선 이후에는 선거에서 정책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카르텔 정당에 속한 정치 엘리트들은 자기 이해·지위·의석에만 집중하고 공공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 유권자들의 요구에 응답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다른 목소리를 가진 정치세력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카르텔에 끼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래서 학자들은 '민주주의를 갉아 먹는 게 바로 카르텔 정당'이라고 말한다.
'한국 주요 정당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가? 카르텔 정당인가'하고 묻는다면, '전형적인 카르텔 정당'이라고 답할 수 있다. 국고보조금의 90% 가까이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두 정당이 가져간다. 두 정당의 재정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국고보조금이다. 결국은 시민사회와 유리된 정당의 모습에서 시민들은 정치를 혐오하게 되고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것 아닐까?
결국 팬덤과 이미지가 정책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더 잘하겠다'는 레토릭만 반복한 선거를 치른 유권자들은 당선된 정당의 후보가 약속한 일을 제대로 했는지 평가를 하고 다시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 원리인데, 이런 평가와 선택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남는 것은 '누가 더 악마인가? 누가 더 천사인가?'뿐이다. 카르텔 정당의 정치 엘리트들도 궁극의 목표가 '정권 재창출'뿐인, 지금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김윤철 : 정당이 시민사회와 유리된 채 국가 내부로 이동하는 현상은, 과거 여당이었으나 지금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이나 중대재해법을 자신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尹대통령, '일하다 죽는 게 노동자'라는 인식의 대행자"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개혁은 운을 뗀 수준이지만, 노동개혁이라는 허울 아래 노조 때려잡기를 하고 있다.
김윤철 : 노동개혁 부분은 우리가 좀 주목해서 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갖고 나온 아젠다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시도했던 개혁 과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줄이겠다면서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게 핵심이었다.
지금도 국가정보원을 앞세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압수수색하고 있다.(대담이 진행된 1월 18일 당일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를 11시간 넘게 압수수색했다.) 이처럼 민주노총 때리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덩치도 되고 맷집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약자를 위시로 한 피해대중이 결집하면, 체제가 바뀔 위험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계속 제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려잡기는 굉장히 의도적이다. 그냥 '반(反)노동'이 아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윤 대통령은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양극화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체제의 산물'이라고 평했듯이 노동 분야에 있어서는 말 그대로 '대행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대재해와 관련해 '원래 일하다 죽는 게 노동자 아니야?' '사용자(고용주)가 마음대로 자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인식을 가진, 그리고 그럴 수 있어야 이득을 얻는 이들의 대행자. 따라서 윤 대통령에게 노동개혁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체제의 '명령어'다.
노동개혁의 의미와 관련해 짚고 넘어갈 게 있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 혹은 노동 약자', 그들을 그저 복지 혜택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은 절반의 이해에 불과하다. 사회적 약자와 노동약자는 자신들의 목소리는 낼 수 있는 권력 자원이 없는, 즉 조직 재화가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와 노동약자를 보호하려면 결사를 조직하고 교섭권을 행사할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진정한 노동개혁이다. 윤석열 정권만이 아니라, 민주당이나 진보정당도 이 점을 좀 유념했으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의 '불안한' 큰 그림
프레시안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위기, 인플레이션 등 국제 정세가 변혁의 시대에 들어선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기만 하면 사고를 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를 보고 있으면 불안할 지경이다.
김윤철 : 윤석열 정권의 기반 혹은 배후라고 할 수 있는 보수 세력, 특히 극우·반공·냉전 보수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가 아닌 용산으로 옮긴 것도, 세간에 도는 풍수지리 이런 부분보다는 군사적인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난 연말부터 핵무장론을 포함한 대북강경론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런 '핵정치'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핵무장이 실제로는 불가능한 국제 질서와 대외관계와 정세가 엄연히 작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한의 핵무장이 실제 전쟁억지력 등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 등. 그럼에도 윤석열 정권은 자신들이 통제가능하다는 설정 속에 무력 충돌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민주화 이후는 물론이고, 분단과 한국 전쟁 이후 남한에서, 한반도에서 '군사화' 담론이 공론장에서 정치-사회적인 의제로 대두되고 있는, 굉장히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2023년 물음에 대한 답은…"이탈하라"
프레시안 : 한국 정치가 한국의 정당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시민들의 야성(野性)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구세진 : 사실상 정당이 사회적 이해관계가 결집된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등 제 기능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목소리는 직접 행동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다. 이를 '열광과 실망의 사이클'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김윤철 : '현장과 실천 지식'을 중시했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앨버트 허쉬만(Albert Otto Hirschman)이 말한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and Loyalty)' 중 한국 시민들은 '항의'와 '충성'에 비해 '이탈'이 부족한 것 같다. 이탈을 해야 기득권에 위협도 되고, 그를 통한 개선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풀뿌리 같은 생활정치의 새로운 실험 또한 이 같은 전략적 이탈 혹은 대안적 삶의 지향 속에 실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디 바다나 지구 밖 우주 한 가운데에다 유토피아 같은 곳을 따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닌 한, 이탈의 전제는 패자부활 같은 재기나 복귀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신뢰'가 조성되어있고 '연대'가 전제되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탈을 도모하기가 어렵다. 요즘 청년들을 보면 줄을 기가 막히게 잘 선다. 모두가 한 줄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걸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탈이 차단되고 봉쇄되어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탈해도 괜찮아'라는 생각, 이탈해도 회복 가능한 기회가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더 성숙하고 더 나은 정치와 사회와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기성 질서 안에서 좋고 나쁨과 옳고 그름만을 따지며 맴도는 게 아니라, 이탈을 통한 대안적 삶의 구현과 현실 개선의 효과를 이룬 사례 등을 적극 발굴하고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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