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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은 평화가 아닌 폭력 상태…한국서 '영구 전쟁 '유지하려는 건 누구인가"

[인터뷰] 노벨평화 월드서밋 상 받는 위민크로스DMZ 크리스틴 안 대표

올해 18번째인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이 강원도 평창에서 12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함께라서 더 강한"(Stronger Together)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월드서밋에 한국계 미국인이자 평화운동가인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은 월드서밋에서 주는 '사회활동 메달'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디엠지 세계 여성 횡단 운동(Women Cross DMZ, 이하 WCD)'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크리스틴 안은 10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주는 이 상을 받게 돼 정말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5년 전 세계 15개국 30여명 여성평화운동가들이 한반도의 전쟁 종식과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에서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한으로 건너왔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맥과이어, 리마 보위,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격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이 함께 했고, 안 대표는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시하고 실현하는데 앞장 섰다. 비무장지대 양쪽에서 1만여 명의 한국 여성들도 평화를 기원하는 이 걸음에 함께 했다. 영화 <크로싱(Crossing)>은 당시 여성들의 평화 기원 횡단 운동을 기록했다. 

WCD는 미국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한반도 평화법' 등 평화 정책에 대한 청원 활동, 2016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북한 여성들과 공동 회의 개최와 같은 국제 연대 활동 등을 이어오고 있다. 

▲크리스틴 안 대표. ⓒ크리스틴 안
 

한국계 '미국인'인 그가 한반도 평화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 대표는 한반도가 아직도 '종전'이 아닌 '정전' 중인 책임이 궁극적으로 미국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종전 협정, 평화 협정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화답하지 않았죠.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 사이의 '내전'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중국 뿐 아니라 유엔 연합군에 참여한 21개 나라들의 공동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종전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선 남한과 북한만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정전 협정에 서명한 미국과 중국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미국인들이 한국전쟁이 한국의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책임감을 갖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전쟁, 미국의 가장 오랜 전쟁입니다." 

하와이에서 살고 있는 안 대표는 한반도 평화의 문제가 자신의 안전 문제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에게 유명 '신혼 여행지' 중 하나로 인식되는 관광지인 하와이는 미국 내에서 주요한 군사요충지로 기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와이 땅의 25%가 군 관련 시설입니다. 해안가를 따라 미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수백만 갤런의 연료 저장고(레드힐 저장창고)가 있습니다. 항공모함과 제트기에 연료를 대기 위한 이 시설들이 노후해 연료가 누출됐고, 이로 인해 9만3000명의 식수원이 오염됐고 유독 물질에 중독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관광지로 하와이만 부각되지요." 

"냉전의 최전선 한국…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동맹 가속화는 위험" 

안 대표는 조 바이든 정권에서도 가중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가 더 위협 받는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열린 지난 3월 유엔 총회에서 북한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5개국(러시아, 북한, 벨라루스, 시리아, 니카라과) 중 하나였고, 이후에도 노골적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편에 서고 있다.  

반면 남한은 북한과 중국에 대해 적대적인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면서 미국이 중국의 경쟁 구도를 염두에 두고 압박하는 한미일 동맹 구도에 자석처럼 끌려 들어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과 미국은 합동군사훈련의 규모를 더 키웠고, 미국의 핵항모까지 동원되는 군사훈련에 자극을 받은 북한은 그 기간 동안 2-3일에 한번꼴로 미사일을 쐈다.

"저는 한국전쟁이 냉전의 최전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해결되지 않은 전쟁이 이 지역의 대규모 군사화의 일부라는 사실, 계속되는 긴장감도 이로 인해 기인합니다. 

최근 한국 해군이 일본의 관함식에 참석해 일본 군함을 향해 거수 경례를 하는 것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저는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일본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이 어떻게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단 군함을 향해 경례를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남북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자 윤석열 정권 내부를 포함해 보수 일각에서 다시 '핵 무장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안 대표는 "안보가 군사적 수단을 통해 달성될 것이라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반박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표한 '2022 세계 방산시장 연감'을 보면 지난해 세계 국방비 지출은 총 2조1130억 달러(약 2270조원)으로 전년 대비 7% 증가했다. 이중 1위는 미국(8010억 달러)로 전세계 국방비 지출은 38%를 차지했다. 중국은 2위(2930억 달러)이며 한국은 10위(500억)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경쟁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각국의 국방비 지출은 결국 민간인들의 목숨을 빼앗고 일상을 파괴하는데 쓰인다. 70년째 '정전' 상태인 한국인들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안 대표는 강조했다. 

"인지부조화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정전체제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현재가 평화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폭력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미군사훈련에도, 북한이 연일 쏘아대는 미사일에도 익숙해지고 둔감해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중단된 상황이 우리 일상을 규정하는 일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산가족들의 삶, DMZ 주변의 여성들,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의 삶, 한국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등 전쟁에 참전한 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제대 군인들과 가족들 등 전쟁이 우리 삶을 망가뜨린 이야기는 먼 과거의 이야기들만이 아닙니다.  

영구적인 전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보는 이들은 결국 록히드마틴 등 군산복합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안 대표는 과도한 국방비 지출로 경제, 환경, 교육 등 지출이 줄을 수 밖에 없는 등 기회 비용의 상실에 대해 지적했다.  

"한국은 '섬'이 아니지만 분단 때문에 섬나라가 됐습니다. 제가 사는 하와이도 섬이기 때문에 물류비용이 30% 정도 더 비싸다고 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분단 때문에 유럽으로 가는 육로가 막혔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적인 공존, 서로가 정상적인 국가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의 영세중립국안이 대안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한국도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으로 가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일까요?   

결국 이를 가로막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같은 큰 나라들의 국익의 문제입니다. 한국인들의 운명은 한국인들이 결정해야 합니다. 한국은 5000년을 하나의 국가로 살았습니다. 한국은 실제로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인 없는 가장 평화로운 나라 중 하나입니다. 21세기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것은 방탄소년탄과 같은 케이-컬쳐뿐만이 아닙니다. 자연과 인간, 다른 나라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온 역사에 기반한 평화의 정신도 있습니다." 

▲미국 연방의회를 상대로 브리핑하는 크리스틴 안. 대표 ⓒ위민크로스디엠지 홈페이지 갈무리

노벨평화상 월드서밋, 평창을 평화도시로 선포 

노벨평화상 수상자 월드서밋은 1990년 냉전 해체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故)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창설했다.

올해 18회째인 월드서밋은 남북 올림픽 공동팀을 구성하는 등 동계올림픽을 통해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평창을 평화도시로 선포할 예정이다.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월드서밋에는 한반도와 세계평화 증진 등을 위한 국제 포럼, 패널 토론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또 국내외 대학생들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함께 평화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 평화 활동에 참여하는 '솔선수범 리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