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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러시아 편에 서나…'부차 학살' 영상 보고도 "성급한 비난 금물"

유엔 안보리서 '부차 학살' 영상 상영…NYT "중국, 푸틴을 서방에 맞선 '동지'로 포용"

5일(현지시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의심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영상이 90초 동안 상영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군의 학살 의혹을 고발하면서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퇴출을 촉구하는 화상 연설을 시작하며 부차, 이르핀, 디메르카, 마리우폴 등에서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 희생자 시신을 담은 영상을 참석자들에게 보여줬다.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 대량 학살 의혹은 지난 3일 러시아가 점령하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지역을 우크라이나가 탈환하면서 불거졌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소도시 부차에서만 3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학살 동영상 보고도 "근거 없는 비난 자제"하자며 러시아 감싼 중국

이날 영상을 통해 공개된 끔찍한 학살과 이를 증언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은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를 보고 들은 뒤 나온 중국 대표의 반응은 못지 않게 놀라운 것이었다.

장준 주유엔 중국대사는 "부차에서 민간인 희생에 대한 영상과 기사는 끔찍하다"면서도 "사건의 전후 상황과 정확한 원인부터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사실에 근거한 비판만 가능하다. 근거 없는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부차 학살 등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해 "가짜 뉴스"라며 우크라이나 내 반러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부인하고 있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셈이다.

그러나 항공 사진을 통해 부차에서 민간인 시신은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던 시기부터 발견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러시아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그들은 수류탄 폭발로 자신의 아파트와 집에서 살해당했고, 러시아군은 오직 재미로 자동차 안에 있던 민간인들을 탱크로 깔아뭉갰다"라며 "(러시아군이) 팔다리를 자르고 목을 베었다"라고 폭로했다. 그는 또 "여성들은 자녀들의 눈앞에서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며 "이런 짓은 다에시(IS의 아랍어 약자)와 같은 다른 테러리스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사실에 대해 "안보리 거부권을 죽음의 권리로 바꿔 사용하는 나라"라면서 "그들이 자신의 침략에 대한 결정을 막을 수 없도록 상임이사국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유엔의 문을 닫을 준비가 됐는가, 국제법의 시대는 끝났는가"라며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당장 행동해야 한다. 책임 추궁이 불가피하다"고 전쟁을 억지하지 못한 국제사회를 압박했다.

▲ 5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상영된 러시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 정황을 담은 동영상. ⓒAP=연합뉴스

중국, 공식적으론 '중립'...내부적으론 "푸틴은 영웅"이라는 다큐로 사상 교육

중국은 3월 초 유엔 총회에서 통과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기권'을 표명한 35개 국가 중 하나다. 북한 등 5개 나라처럼 노골적으로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았지만, 절대 다수(141개국)인 '찬성' 대열에 합류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공식적으로는 '중립' 입장에 있는 중국이 결국에는 러시아 편에 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중국은 자신의 경제가 러시아보다 서방에 훨씬 더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이해한다"며 중국이 러시아를 돕는다면 "스스로 중대한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압박성 말 이외에 중국을 움직일 다른 수단은 없다. 전임인 트럼프 정권의 대다수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조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을 대척점에 두고 있는 '반중 정책'은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선뜻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리 없다.

오히려 중국에게 유리한 것은 러시아와 공동으로 미국과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중국의 태도는 이런 흐름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이 내부적으로는 러시아 편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4일 중국 공산당이 전국 관리들을 대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자긍심을 되살린 영웅"으로 평가한 다큐멘타리를 보고 토론하는 사상 교육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제작된 이 다큐멘타리에는 러시아가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웃 국가들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소련의 붕괴가 '서방 자유주의에 유혹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며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 등 노선으로 서방에 우호적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비판했다. 이에 반해 푸틴은 스탈린의 위상을 복원시켜 러시아 국민들의 자긍심을 되살린 지도자라고 극찬했다.

NYT는 이런 중국 내부의 정치적 움직임에 대해 "푸틴을 서방의 지배에 맞선 '동지'로 포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오는 10월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을 예정인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 정치적으로도 공산당 내부를 단속하는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미국 손 들어주지 않아도 아시아 교역에 지장 없어..."중-러 파트너 관계 강화"

중국이 민간인 학살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희색지대'에 머무르는 이유는 경제적으로도 러시아를 비난하는 대열에 합류하지 않아도 크게 손해볼 것이 없다는 계산 때문이기도 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5일 "미국과 유럽연합이 중국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고 제재에 동참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반응은 훨씬 절제된다"며 "중립을 취하려는 중국의 노력이 아시아에서의 교역이나 외교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싱가포르국립대 남아시아연구소 아미텐두 파릿 분석가는 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시아 대부분 지역과 중국의 경제적·사업적 연결 고리는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영향을 받기에는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또 유럽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 방안 중 하나로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를 고심하는 것도 중국에겐 기회다. 중국은 싼값으로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는 반사이익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2월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수입 계약을 러시아와 체결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를 강조하는 시각의 전문가들은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를 확신을 갖고 주장하고 나섰다. 조나단 D.T. 워드 아틀라스 오거니제이션 대표는 5일 미국 <폭스 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은 아시아에서 미국과의 '전쟁(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 주도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궁극적 목표를 갖고 있다"며 "중국은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점에서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를 재생산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공통의 이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