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트럼프의 '몽니', 美민주주의 시계 19세기로 돌려놓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대선 패배 나흘 만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이날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이날 행사에는 멜라니아 여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 로버티 윌키 보훈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10여 분간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트럼프는 별도의 입장 표명이 없었다. 

한편,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바이든은 이날 행사 이후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전날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면서 정권 이양을 거부하는 것과 관련해 "아주 솔직히 말해서 그냥 망신스럽다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생각하는 오직 한 가지는 이것이 대통령이 남길 유산(the president’s legacy)으로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비협조'가 아직까지는 인수위 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1789년)된 이후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배한 뒤 후임자의 정권 인수 과정에 협조하는 않은 사례는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CNN은 11일 1801년 존 애덤스, 1829년 존 퀸시 애덤스, 1869년 앤드루 존슨 등 3명의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후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아직은 내년 1월 20일에 있을 바이든의 취임식 참석 여부를 밝힌 적은 없다. 여전히 "합법적인 투표만 계산하면 내가 쉽게 이긴다"며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충신'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도 10일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당선자로의 권력 이양 작업에 대해 묻자 "트럼프 2기 정부로 전환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해, '선거 불복' 대열에 합류했다. 트럼프가 임명한 에밀리 머피 조달청장도 "아직 대선 승자가 확정되지 않았다"며 당선인 인수위원회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무려 150년에서 200여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트럼프에 앞선 단임 대통령들 중에도 선거 결과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면서 후임자의 취임식에 불참한 사례들이 있었고, 이런 역사는 지금 당장은 힘들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바이든 당선자와 그 지지자, 더 나아가 미국인들에게 분명한 두 개의 메세지를 준다. 

첫째, 선거에서 패배한 대통령이 '몽니'를 부릴 지라도 결국 정권은 후임자에게 이양될 수 밖에 없다. 트럼프의 '선거 불복'을 거들고 나선 폼페이오 장관도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향후 절차가 헌법에 명확히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지난 4년 동안 아무리 '법 위의 대통령'으로 기능했을지라도 헌법에 정해져 있는 대통령 임기마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둘째, 선거에서 패한 대통령의 '몽니'가 결과적으론 후임자에게 정치적 이득을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CNN은 "선거 결과가 문제시될 정도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시대에 퇴임하는 대통령이 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국가에 놀랄 만큼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며 "세번 모두 새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크게 지지를 받았으며, 연임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앞선 3명의 대통령의 사례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존 애덤스 (1801년) 

존 애덤스 대통령(2대)은 1800년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했지만 자신의 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에게 패했다. 애덤스가 처음 대통령이 된 1796년 선거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통령과 부통령이 러닝메이트로 같이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부통령을 따로 뽑았다. 최다 득표자가 대통령, 차상위 득표자가 부통령이 됐다. 따라서 애덤스와 제퍼슨은 애덤스가 대통령일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1800년 대선 당시 애덤스와 제퍼슨이 선거인단 선거에서 동률이 나왔다(제퍼슨이 당시 다른 후보인 빌 바에게 부통령 자리를 약속하며 연합을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헌법에 따라 하원에서 대통령을 결정하게 됐는데, 하원은 제퍼슨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정적에게 패한 애덤스는 1801년 3월 4일에 있었던 제퍼슨의 취임식에 불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덤스에서 제퍼슨으로 권력 이양은 연방주의에서 공화주의로의 첫 권력 이양이라는 점에서 '1800년의 혁명'으로 불리게 됐다. 연방주의는 중앙은행, 연방 세금 등 연방정부의 기능과 권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이고, 공화주의는 각 주의 권한을 중시하면서 연방정부의 권한을 최대한 견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연방주의 입장은 지금의 민주당, 공화주의는 공화당의 뿌리다.

2. 존 퀸시 애덤스 (1829년) 

존 퀸시 애덤스(10대)는 존 애덤스(2대)의 아들이다. 그는 여러가지 면에서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존 퀸시 애덤스는 1824년 선거에서 앤드루 잭슨에게 선거인단 선거에서는 뒤졌다. 그러나 후보가 난립하면서 어느 후보도 과반수 득표가 불가능해지자 애덤스는 헨리 클레이와 연합을 꾀했고, 하원 선거에서 클레이 지지자들의 표까지 받게 되면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잭슨은 이 과정에 대해 "부정적인 흥정"이 일어났다고 격분하며 1828년 선거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공약했다. 잭슨은 실제로 1828년 선거에 재출마해 존 퀸시 애덤스를 누르고 승자가 됐다. 애덤스는 선거 패배 후 잭슨과 우호적인 관계로 남으려고 시도했으나 거절당했고, 애덤스는 1829년 3월 4일 잭슨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3. 앤드루 존슨(1869년) 

앤드루 존슨(20대)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부통령이었다. 존슨은 1865년 링컨이 암살된 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존슨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1868년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이다. 존슨은 결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도 받지 못했다. 

1868년 선거에서 존슨을 누르고 공화당 후보가 된 율리시스 그랜트는 큰 표차로 민주당의 호라시오 시모어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존슨은 같은 당 후보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1869년 3월 4일 그랜트의 취임식 참석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는 대신 백악관에 남아 마지막으로 법안에 서명을 했다. (트럼프가 내년 1월 20일 바이든 취임 전까지 자신이 원하는 행정명령에 마구잡이로 서명할 것이란 일부 언론의 관측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미국 민주주의 시계를 200년 전으로? 

하지만 미국 역사상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모두 11명(트럼프 포함)이다. 나머지 대통령들은 모두 현직으로서 재선에 실패했지만, 패배를 받아들이고 후임자의 인수인계를 도왔으며, 취임식에도 참석을 했다.

만약 트럼프가 끝까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불만을 제기하다가 바이든의 취임식에 불참하게 된다면,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시계를 19세기로 200년이나 뒤로 돌려놓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다.

한편, 트럼프 정부 초청으로 미 대선을 참관한 미주기구(OAS) 소속 국제선거참관단은 투.개표 과정에서 부정선거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11일 <더힐>이 보도했다. 

참관단은 13개국 선거전문가 28명으로 구성됐고, 이들은 워싱턴 DC, 조지아, 아이오와, 메릴랜드, 미시간주에서 선거 절차를 지켜봤다. 참관단은 보고서에서 "부정 선거나 투표 부정 사례가 없었다"며 "현재까지 대선 결과에 의문을 제기할 심각한 선거 부정의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참관단은 "선거에서 경쟁한 모든 당사자는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될 때 사법당국에 잘못을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면서 "후보자들은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라 법원에서 합법적 주장을 펼침으로써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트럼프의 '선거 불복'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날 알래스카 선거 결과 트럼프의 승리가 확정됐지만 승패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날까지 바이든이 확보한 선거인단은 279명, 트럼프는 217명이 됐다.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 선거에서 과반수(총 538명 중 270명)를 확보한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된다. 

▲ 11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재향군인의 날 행사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120736564160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