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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부심' 트럼프 무너뜨린 흑인 여교수 한마디 "질문 끊지 마세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토론을 즐긴다. 스스로 "안정적 천재"라고 자랑하는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의 최대 무기는 '뻔뻔함'이다. 자신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거짓말도 잘하고, 그에 대한 가책을 느끼지 않는지 표정도 변하지 않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듣지 않으면, 그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트럼프는 TV 리얼리티쇼에 출연하기도 해서 카메라에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대선후보 토론이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공격적이면서 뻔뻔한 트럼프는 강점을 보여왔다. 트럼프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낙마시킨 전설적인 언론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과 단독 인터뷰에 응했던 것도 이런 '자신감' 때문이었다고 보여진다. 우드워드는 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15일(현지시간) 발간된 신간 <격노(Rage)>를 썼고, 이 중에서 트럼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9 사태와 관련된 발언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오는 11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첫 대선후보 TV토론이 9월 29일(미시시피주 클리브랜드) 열린다. 여론조사 결과 TV토론에서 트럼프가 민주당 조 바이든 대선후보를 이길 것이라고 보는 유권자들이 더 많았다(응답자의 47%가 트럼프, 41%가 바이든이 더 잘할 것이라고 답했다). 어릴 적 말을 약간 더듬기도 했다는 바이든은 '달변가'라고 하기는 어렵고, 트럼프처럼 공격적인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바이든을 쉽게 제압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트럼프는 그래서 총 3회로 예정된 TV 토론을 한번 더 하자고 우기기도 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이런 '토론 자신감'에 상처가 나는 일이 발생했다. 15일 오후 ABC방송이 주최한 펜실베이니아주 유권자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트럼프는 유권자들에게 '들볶였다'. 우선 질문들이 코로나19, 인종갈등, 의료보험 등 결코 트럼프에게 유리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또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이 아닌 유권자들이 이런 '송곳 질문'을 던졌다. 트럼프가 평소처럼 공격적인 태도로 깔아뭉개거나 적당히 무시해도 되는 (혹은 거의 매주 인터뷰를 하는 <폭스뉴스>처럼 알아서 우호적인 질문을 하는) 질문자들이 아니었다. 위기를 모면하는 익숙한 방법을 쓸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트럼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고, 그의 핑계에 가까운 주장들은 자체의 모순들이 도드라져 보였다.

물론 트럼프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에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할 정치 이벤트 중 하나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지지할 후보를 정하지 못한 중도적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비쳐지진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트럼프 "코로나19 대응, 과거로 되돌아가도 더 잘할 수 없어...바이러스, '군중심리'로 사라질 것"

이날 가장 트럼프를 괴롭힌 이슈는 당연히 코로나19 사태다.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나는 문제를 축소시켜(downplay) 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왜 국민들을 속여왔냐고 질문을 하자 트럼프는 "나는 항상 문제를 가볍게 여긴 것만은 아니다. 행동으로는 문제를 확대(up-play)시켰다"고 답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과거로 되돌아가면 다른 조치를 취할 것이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아주 잘 해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중국발 입국 금지 조치를 뜻하는) 나라를 폐쇄함으로써 한 일은 250만 명,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 7월 우드워드와 전화 인터뷰에서도 코로나19 사태 대응과 관련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트럼프는 코로나19가 초기에 뉴욕, 뉴저지, 미시간 등 민주당 출신 주지사들이 있는 주를 중심으로 확산된 사실을 언급하며 "민주당이 운영하는 도시와 주의 잘못 때문"이라고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민주당에 돌리기도 했다.

트럼프는 또 "군중심리(herd mentality) 같은 게 생겨서 바이러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실언을 하기도 했다. <더 힐> 등 현지언론들은 이 발언이 '집단 면역(herd immunity)'을 헷갈려서 '군중 심리'로 잘못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코로나19는 백신 없이도 사라질 것이고, 백신이 있으면 훨씬 더 빨리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스웨덴이 실험했던 '집단 면역'을 거론한 것이라면, 미국은 '집단 면역'을 택할 경우 20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트럼프 "식당 종업원들의 마스크 착용은 좋지 않다...마스크 만지고 접시도 만져"

트럼프는 또 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냐는 유권자 질문에 엉뚱하게 바이든을 공격하고 나서기도 했다. 바이든은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연방정부 차원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에 대해 트럼프는 "그들(민주당)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바이든)는 결코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현재 대통령이 아닌 바이든은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는 트럼프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조치다.

트럼프는 이어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스크 착용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자가 "누구냐"고 묻자 트럼프는 "웨이터들"이라고 답했다. 웨이터들이 마스크도 만지고, 접시도 만지기 때문에 안 좋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선천성 질병 가진 흑인 여교수 질문에 트럼프 '거짓말'..."미국은 인종차별 없다" 

이날 가장 인상적인 질의 응답은 '우육종증(뼈와 림프절에 작은 육아종이 생기는 질병)'이라는 선천적 질병을 가진 흑인 여교수가 트럼프의 의료보험 정책에 대해 질문한 것이었다. 

이 교수는 매우 차분한 어조로 자신이 선천적으로 우육종증을 갖고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이 병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다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는 "잘됐다"고 말하자 이 교수는 "아직도 의료보험 문제가 있다는 것만 빼면 잘 됐다"면서 자신이 일년에 보험비로만 거의 7000달러를 내고 있으며, 기존 질병에 대한 보험비를 따로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바마 케어(오바마 정부 당시 만든 의료보험 정책)'가 제대로 시행됐으면 자신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을 이어가려 하자 트럼프가 말을 끊었다. 그러자 이 교수는 "제가 질문을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트럼프의 태도에 대해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만성 질환자와 기존 질병을 가진 질환자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마쳤다. 

이에 트럼프는 "내가 이미 다 했고, 더 나은 의료보험 정책을 내놓았다"고 답변했지만, 사회자도 이런 답변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트럼프는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고 계속 "나는 이미 다했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인종차별에 대한 유권자 질문에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흑인들에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라면서 "미국은 인종차별 문제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 15일 있었던 타운홀 미팅에서 트럼프는 유권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따지 못했다.   ⓒ AP=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170559321507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