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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무현

노무현 대선전략 '절반' 수정

‘신민주대연합’ 용어 폐기, DJ 아들 문제 비판(2002.5.11)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0일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연대를 의미하는 '신민주대연합' 용어의 폐기 방침을 밝히고, 그 동안 특별한 언급을 자제했던 대통령 아들비리 문제에 대해서도 이례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성정치에 도전하는 개혁 이미지로 '노풍'을 불러일으켰지만, 표를 의식해 기성정치에 타협해야 하는 '현실정치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고민에 빠졌던 노 후보의 전략이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관심이다. 

노 후보의 이 같은 변화는 YS와의 회동에 대한 부정적 여론 및 최근 대통령 아들 등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으로 노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노 후보의 전략이 전면 수정됐다고 보기엔 다소 이른 듯하다. '양수겹장'을 노리는 양면전술 구사단계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신민주연합' 용어 폐기, DJ 아들문제 공개 비판**

노 후보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주로 '정책구도로의 정계재편'이라고 말해왔는데 언론에서 '신민주대연합 정계개편'으로 쓰더라"면서 "신민주대연합은 과거회귀적인 표현이고 과거 정치세력이 다시 등장한다는 느낌 때문에 여론이 좋지 않다"고 말해, '신민주대연합'이라는 용어를 폐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 후보는 "내 뜻은 지금 정치판 구도를 분열에서 통합으로 만들고 국민통합의 정치 구도로 변화시키자는 것"이라며 자신이 정계개편을 추진하는 의도를 설명했다. 

노 후보 측의 김원기 정치고문도 "단순히 민주대연합이라고 하니까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옛날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고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공격을 받아왔다"며 "민주개혁연합 등 다른 적절한 표현을 찾을 것이나, 앞으로는 정책구도 정계개편이란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종필 공보특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관리는 정말 잘못됐다"며 "청와대에 친인척 관리 비서관까지 두고 있는데 아들들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 후보 측에서 대통령 아들들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유 특보는 "김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아니다"면서 "홍걸씨가 최규선씨로부터 3억원을 받은 것에 대한 잘못을 지적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노 후보는 유 특보의 발언에 대해 "그런 인식은 전부터 가지고 있었으나 내가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야박하게 말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정책연합'으로 선회했지만, YS와의 끈 놓지 않아**

노 후보의 이런 입장 변화는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이후 자신의 행보가 '과거 회귀'로 비쳐 비판여론을 불러일으킨 데 대한 대응으로 분석된다. 지역주의, 철새정치 등의 기존 정치권 병폐에 도전해 온 노 후보의 참신한 이미지가 '노풍'의 주된 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 확정 직후 YS를 찾아가고 DJ를 감싸는 태도를 취한 점이 자신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는 자체 진단이 내려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대연합' 대신 '정책 구도의 정계개편'을 추진하고, DJ 아들 비리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힘으로써 본래 자신의 위치로 돌려 놓겠다는 의지다. 

또한 9일 YS가 부산시장 천거 요청을 거부해 지방선거전 YS와의 연대가 불가능해지자 사실상 YS와 연대의 의미로 쓰였던 '신민주대연합' 용어를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노후보 측의 유종필 공보특보는 10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YS가 부산시장 천거 요구를 거부함에 따라 이같은 입장을 밝히게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지방선거 필승전진대회에서 노 후보의 정계개편론을 공식 지지하고 나선 점도 주목된다. 한 대표는 그간 "당 차원의 정계개편 추진은 없다"고 부인해 왔다. 

한 대표는 이날 "노 후보가 주장하는 정계개편에 찬성한다'며 '과거처럼 사람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발전과정에서 국민을 위해 역사적 사명을 가진 정치인이 소신에 따라 모이는 게 새 시대의 정계개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뜻을 가진 모든 분들을 모으고 선거 승리를 위해 우리 당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이자리에서 선언한다"고 말해 정계개편 추진과정에서 당명개정을 포함해 당직 등 모든 기득권 포기의사를 확인했다.

결국 노 후보와 민주당은 이날 YS-DJ 연합으로 인식되던 민주연합론 대신 한나라당이나 정치권 내외의 개혁세력을 규합하는 정책 중심 정계개편을 추진하겠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노 후보의 이러한 입장선회와 민주당의 공식 인정이 YS와의 연대 가능성마저 배제한 것은 아니다. 부산시장 후보로 'YS 사람'인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선택한 것도 YS와의 끈을 남겨두겠다는 의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 후보 측의 김원기 정치고문도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우리 입장을 밝혔으니 YS에게 더 이상 매달리지 않을 것이나 (YS를)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지방선거 후 대선 국면에서 YS와의 연대 가능성은 열어뒀음을 시사했다. 

'양수겹장'을 노리는 양면전술이다. 

***'부패 척결'에 동참했지만, DJ와의 연계 유지**

한편 이회창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됨에 따라 이 후보와의 대립전선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당면 과제로 대두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변화요인이다. 

이회창 후보는 9일 한나라당의 마지막 서울지역 경선이 끝난 직후 "깨끗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점을 제일성으로 터뜨렸다. 대통령과 그 아들 등 현 정부 최고권력층의 온갖 비리 의혹을 공격 소재로 삼아 '부패 척결' '깨끗한 정부'를 이번 대선의 중심 대립각으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즉각 반응했다. 10일 서울 경기지역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서 "국정에는 부정부패 문제뿐 아니라 경제와 민생도 있으며, 부정부패를 밝히고 규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방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한나라당과 이 후보는 국민의 세금과 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사용하고 비리수사에 대한 방탄 국회만도 수십차례 열었으므로 비리청산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노 후보가 이 후보 측의 '부패 청산' 슬로건에 대해 "자격이 없다"는 논리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스스로 DJ 아들 비리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런 배경에서 이날 공보특보를 통한 간접적 방식으로 DJ 아들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았고, 또한 'DJ와의 차별화는 아니다'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이 문제 역시 노 후보의 자세가 최종적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반부패 입장'은 강조하되, DJ와의 연계고리는 계속 남겨두는 양면 전술이 여기서도 또 한번 활용되는 듯하다. 

결국 노 후보의 고민은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강하게 밀어부쳤던 YS와의 제휴는 수포로 돌아가고, 반면 DJ 아들 비리는 점점 더 크고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부패척결'로 대선국면을 주도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대연합' 대신 '정책에 의한 정계개편'을 주장하고, DJ 아들문제를 공개 비판했다. 하지만 아직도 YS의 답은 기다려야 하고, DJ와의 관계도 유지시켜야 한다. 전략의 절반 수정, 양면전술 구사단계다. 

또 언제 어떤 문제로 다시 한번 명확한 태도표명을 요구받게 될지 모른다. 고민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