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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맨밥'만 먹는 아이들의 인권은?

"채식 급식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공장식 축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만든 황윤 감독과 그의 아들 도영이는 채식주의자다. '돈가스'를 너무 좋아하던 아들은 엄마와 함게 다큐멘타리를 찍는 과정에서 '돼지고기'가 아닌 '돼지'를 사랑하게 됐고, 자발적으로 채식주의자가 됐다. 

"내 아이가 학교 급식에서 먹을 건 맨밥 뿐"

지구에서 동물들과 함께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채식을 선택한 도영이는 하지만 학교에서 건강하게 지내기가 어렵다. 

"내 아들이 학교 급식에서 먹을 건 맨밥뿐이다. 어제는 순대, 오늘은 제육볶음, 내일은 오리고기, 모레는 돼지갈비찜. 아들이 먹을 수 있는 반찬은 거의 없다. 아들을 위해 전부터 도시락을 싸서 보냈는데 요즘은 점심 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교실까지 갖다준다. 다행히 집이 학교까지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한참 바쁘게 글 쓰거나 영화 작업 하다가 도시락 싸려면 참 억울하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와 지구를 위해 했던 선택이, 아이와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황윤 감독 페이스북의 글 일부 인용)

 


채식주의자들에게 '육류 편향'인 단체 급식은 '인권'의 문제이자 '민주주의'의 문제다. 학교 뿐 아니라 군대, 병원 등 모든 단체 급식에서 소수자인 채식주의자들은 차별받고 배제된다. 

전국의 30개 채식단체들의 모임인 '2018 지방선거를 함께하는 한국채식단체연대'(이하 채식단체연대)가 지난 6월 13일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전국 진보교육감 후보들에게 채식 관련 질의서를 보낸 이유다. 

채식단체연대는 "현재 건강과 지구를 위해 채식을 결심한 학생들이 급식에서 먹을 것이 밥 밖에 없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학교 급식에서의 채식 선택권 및 기타 채식 관련 정책들은 교육 현장의 민주주의, 다양성 존중, 신념 존중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채식단체연대는 "학교에서부터 자신의 신념이 좌절되는 경험을 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자신의 정당한 요구가 수용되는 민주주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채식선택권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며 새롭게 선출된 교육감들이 이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가질 것을 촉구했다. 

진보교육감들 '채식 선택권'에 공감하지만...

이 질의서에 대해 조희연 서울교육감 당선자 등 12명의 당선자가 답변을 보냈다. 경기 송주명 후보, 광주 최영태 후보, 경북 이찬교 후보도 답변을 보냈지만 낙선했다. 반면 진보교육감 당선자 중 이재정 경기교육감, 최교진 세종교육감 두 명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보수(강은희 대구교육감, 임종식 경북교육감)와 중도(설동호 대전교육감) 성향의 교육감 당선자들에게는 질의서를 보내지 않아 답변을 받지 못했다. 

질의서를 보내온 진보교육감 당선자들은 대체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권장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였고, 학생, 교사, 학부모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특히 김석준 부산교육감, 장휘국 광주교육감, 김승환 전북교육감 등이 "이미 주1회 채식급식을 선택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학교 급식에서의 채식 선택권 보장' 문제에 대해 "현재의 학교급식 여건상 어려움은 있으나, 채식을 실천하는 학생들을 위해 적절한 채식메뉴를 제공하는 것은 인권과 다양성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당선자가 공감했다. 특히 광주 장휘국, 충남 김지철, 전남 장석웅, 세 명의 교육감은 "수요가 있을 시 채식메뉴를 제공하도록 하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답변을 했다. 

우유 급식과 관련해서는 "이미 학생들에게 채소와 과일을 제공하는 '채소과일 데이' 사업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고 답한 부산 김석준 교육감이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채식주의자는 먹고 살기 힘든 나라, 한국"


황윤 감독은 2015년 베를린영화제 참가를 위해 일주일 동안 베를린에 머물렀을 때 "어느 식당에 가도 비건(완전 채식주의자) 메뉴가 최소 한두개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고,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며 "한국은 일반 식당을 가도 된장찌개나 비빔밥에도 육류가 포함된 경우가 많아서 채식주의자들은 정말 먹고 살기 힘든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도시들이 글로벌 도시가 되야 한다는 것은 고층 빌딩을 더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권감수성, 생태감수성 높은 도시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식당마다 1-2개 비건 메뉴가 포함되는 것부터 보장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포르투갈에서는 공급 급식의 비육류 식물식 선택권을 보장하는 법률이 마련됐는데 이런 인권 차원에서 이뤄졌습니다."

포르투갈은 지난 2017년 3월 △초등 및 중등 교육기관 △고등 교육기관 △국가 보건서비스 소속기관 △교도소 및 감화기관 △가정 및 데이케어 센터 △사회서비스 기관 등의 공용매점 및 식당에서 공급되는 식사에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는 의무를 규정하는 법안이 제정됐다.

국내에서도 광주광역시와 전남 곡성군이 조례(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녹색식생활 실천 및 지원 조례)를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학생들의 녹색식생활을 교육하고 이를 실천하도록 교육감과 협의할 수 있으며,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