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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한국 가부장제의 불법성을 고발하다"

[토론회]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남성성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이후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미투(#Me Too)'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만연한 강간문화, 성폭력 문화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안태근 전 검사, 고은 시인, 이윤택 연출가, 조민기 영화배우,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 가해자로 지목된 다수의 이들은 '미투' 폭로 이전에는 한국 사회에서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사들로 '존경' 받던 이들이었다. 가해자들의 실체가 드러남으로써 미투 폭로는 성폭력 사건에서 문제는 항상 의심되고 인정받지 못했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이윤택과 바바리맨의 행위는 다른가, 유사한가" 

"고은 시인은 왜 여자들 앞에서 바지를 벗는가. 왜 조민기는 여학생들에게 성기 사진을 찍어 보내냐. 왜 연극인 이윤택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기 주변을 안마하게하고 흥분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였는가? 고은 시인의 행위와 바바리맨의 행위는 어떻게 다른가? 아니면 유사한가?"

미투 사건으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남성성'에 대한 토론회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로 지난 27일 오후 열렸다. 

발제를 맡은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미투 사건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는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가부장적 권력의 불법성을 공적인 영역에서 고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가부장제는 우리 사회의 전통이고, 원리로 여겨졌다. 아내 구타 성폭력, 성매매 등 그 사안만 따로 떼어내서 불법적인 것으로 만들어왔지, 가부장제 자체가 문제적인 것인지 토론해본 적이 없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을 정치적 주체로 상정하고 있는 근대사회에 적합한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한 번도 질문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미투 폭로를 통해 문제화된 한국 사회의 '지배적 남성성'을 역사적 맥락 속에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은, 이윤택, 안희정 등은 미투가 일어나기 전까지 한국에서 존경받는 문화권력, 정치권력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남성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투를 통해 드러난 것은 그들 때문에 성평등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이제까지 페미니스트들이 성평등에 대한 의제를 내놓으면 이들 남성들의 답변은 '해일이 지나가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자기를 성추행하는,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남자의 존재는 '해일'이다, 그런데 남성들은 '조개'라고 했다.  

한국 사회의 공적 주체가 누구인가를 설명하지 않고는 이들이 왜 지배적인 남성성인지 말하기 어렵다. 나는 여기서 여성학자 정희진, 권김현영이 주장한 '식민지 남성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근대 이후 한국 사회는 일본의 식민 통치로부터의 해방, 민족독립, 정부 수립 등을 거쳤다. 그 이후 빠른 산업화와 독재정치와의 싸움, 세계화의 물결 등 한국 사회는 이른바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급박함이 항상 있었고, 이것을 책임지는 공적 주체는 '남성'들이었다. 이들의 남성성은 외세와의 관계에서 다른 나라 남성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구축됐다.  

하지만 한국 사회 내부에서 이들 남성성은 한 번도 질문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이들 남성을 돌보는 여성성, 모성의 여성성, 참아야 하는 여성성으로 '여성성'이 구축됐다. 서구처럼 국민국가가 건설되고 사회 안에서 누가 시민인가를 싸워야 했던 남성성과는 굉장히 다르다."

한국 사회의 '과잉된 가부장적 남성성' 

토론자로 참여한 김명인 인하대학교 교수도 한국 사회의 '과잉된 남성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한국 사회가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시민혁명을 경험하지 못하면서 과도한 가부장적 남성성이 '지배적 남성성'으로 정착됐다. 식민지, 군사독재, 산업화 등을 겪으면서 수많은 투사와 영웅이 탄생했다. 정치적인 스펙트럼에서 좌우를 불문하고 '남성 영웅'을 추앙하고 이들이 공적 주체이자 권력이 됐다. 

그나마 많은 여성들의 노력과 싸움으로 양성평등에 접근하지 위한 법제도적 개혁이 이뤄졌지만, 남성들이 한편으로는 여성을 착취하고 한편으론 보호하는 성별 위계질서까지 깨지는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남성성'을 획득할 수 없는 상태로 내던져진 남성들이 양산되면서 그나마 이룬 제도적 개혁에 대해 '역차별'이라는 공격이 제기되고 있다.  

'과잉된 가부장적 남성성'과 '공격적인 반여성주의'가 현재 한국 사회 '남성성'이 드러내는 두 가지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투 가해자만 '괴물'? 가부장 남성이 가해자이자 동시에 판관이 되고 있다

김은실 교수는 미투 사건에 대한 남성들의 대응 방식이 '가해자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투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과반 이상의 남성들이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가해자들이 얼마나 추악한 행위를 했는지를 부각시키며 그들을 '변태', '괴물'로 몰아가고 있다. 미투를 통해 수면으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남성성 논의가 '일반 남성'과 가해자들을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성찰하지 않는, 국가와 자기를 일치시키는, 그래서 내부의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약점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남성성이 만들어진 것과 미투 사건을 연결시켜야 한다." 

김명인 교수도 같은 우려를 말했다.  

"한국 사회의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여성에 대해 대상화, 타자화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 여성은 사회적, 일상적, 성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며 경제적, 물리적 보호를 그 대가로 제공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가부장적 남성성은 여성을 하위주체로 동원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런 뿌리 깊은 의식 때문에 성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위계 하에 타자성을 구현하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간주된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미투 운동을 보며 피해자 여성이 성폭력을 폭로, 고발하면 사법기관으로 대표되는 가부장 국가가 이를 받아서 가해자 남성을 응징하고 배제하는 구조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건강한 사회에서 일부 별종과 변태를 배제하면 된다는 논리가 작동하면서 여성은 피해자, 남성 가부장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판관이자 해결자가 되는, 기존의 헤게모니적 남성 지배 권력에 영향을 못 주고 그들을 구조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투에서 살아남은 헤게모니를 쥔 남성들이 현재 그런 구도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얼마나 병들었는가, 지배적 남성성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한편, 토론자로 참석한 정재원 국민대학교 교수는 현재 미투 운동에서도 배제되는 성산업의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한국의 성산업은 성폭력 문화를 재생산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에 대한 보도를 보면 '마치 술집 접대부 대하듯이 했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술집 접대부는 막 대해도 되는 존재인가?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비공식적 영역이라고 불리는 성산업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 없이 진행되는 성폭력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나 대안 논의는 허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