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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문재인

문재인의 '뺄셈 정치'는 성공할 것인가?(2015.12.15)

안철수 의원은 소통하기 힘든 정치인이다. 13일 탈당을 결행하기까지 과정을 보면 '혁신전당대회' 말고는 어떤 제안도 다 거부했다. 탈당 이후 페이스북을 도는 '문-안을 한방에 정리'해준다는 웹툰은 안 의원의 이런 고집 불통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김한길이 아니다. 박지원도 아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가장 큰 패착은 바로 이 지점이다. 안철수는 '이해하기 힘든 정치인'이지만, '구태 정치인'은 아니다. '정치 기술자'는 더더욱 못 된다. 문 대표의 '뺄셈 정치'가 불안한 이유다. 

노무현과 후단협, 문재인과 비노

당 대표가 된 후 소위 '비노' 세력은 지속적인 '문재인 흔들기'를 자행했다. 이는 문 대표에게 2002년 대선 경선 이후 당내에서 있었던 '노무현 흔들기'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왜? 당시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던 세력과 현재의 '비노' 세력은 교묘하게 겹친다. 

안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을 하기 전날인 12일 밤, 문 대표가 안 의원의 집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일도 2002년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정몽준 의원은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와 후보 단일화 약속을 깼고, 노 후보는 정 의원 집을 찾았으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문전박대를 당한 이유도 똑같다. 당시 정 의원이 후보 단일화 파기를 선언한 것은 노무현 후보가 '공동 정권을 꾸릴 생각 없다'는 점을 <프레시안> 인터뷰를 통해 밝혔고, 정 의원은 이에 발끈했다.(관련기사 : [노무현 최후 인터뷰] "리더십의 핵심은 국민의 힘") 노 후보는 정 의원의 집을 마지못해 찾았지만, '공동 정부' 약속을 할 생각은 없었다. 문재인 대표도 12일 밤 안 의원 집을 찾아갔지만 '혁신 전대'를 약속할 마음이 없었다. 

대선 하루 앞둔 '단일화 파기' 소식에 분노한 2030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오면서 노무현 후보는 어렵사리 정권을 잡았다. 문제는 '노무현 흔들기'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계속 됐다는 것이다. 집권에 실패한 보수 세력은 전력을 다해 노무현 대통령을 흔들었고, 여기에 가세한 게 '후단협' 세력의 일부였다. 급기야 이들은 한나라당과 손 잡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무후무한 쿠데타를 감행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유폐'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하다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잠시 노무현 대통령 곁을 떠났던 문재인 대표는 탄핵을 계기로 복귀했다. 

이 모든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함께 겪은 문 대표에게 안철수 의원의 탈당은 2002년 정몽준 단일화 폐기를 넘어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의 데자뷰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탄핵을 계기로 노무현 진영의 '뺄셈 정치'가 가동됐던 것처럼, 안철수 탈당을 계기로 2015년 문재인의 '뺄셈 정치'가 본격화됐다. 

노무현의 '대연정'은 '뺄셈 정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권의 비주류 출신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대선 후보 때 계속됐던 노무현 흔들기의 본질은 노무현이 본인들의 이해를 대리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당시 야권 주류의 '뒤끝'이었고, 결국 권력 싸움이었다. '정몽준과 공동 정부를 구성할 생각이 없다'는 대선 직전의 폭탄 선언은 결국 당시 야권 주류와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다는 얘기였다. 정몽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집권한 노무현 대통령은 더군다나 야권 구주류에게 갚아야할 '정치적 빚'이 없다고 생각했다. 

노 대통령이 집권 후 열린우리당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구주류와 '결별'을 시도했다. 열린우리당은 탄핵이란 계기가 만들어지면서 (정치적) 쪽수 늘리기 차원에선 성공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본래 추구했던 목적에서 보자면, 실패했다. 탄핵을 감행한 것에 대한 거대한 민심의 분노가 몰아치면서 구주류 상당수가 열린우리당 내로 흡수됐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에도 당시 탄핵에 찬성했던 의원들이 건재하고 있다.)

한나라당 일부에 권력을 나누겠다는 노 대통령의 2005년 대연정 제안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뺄셈 정치'로 해석할 수 있다. 한나라당 내 합리적인 보수 세력의 힘을 빌려 당시 여권(현재는 야권) 세력을 재편하려는 큰 구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끝까지 간다...그 끝은?


문재인 대표는 최근 측근 의원에게 "참 외롭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안 의원 탈당 직후엔 "정치가 정말 싫어지는 날이다. 진이 다 빠질 정도로 지친다"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나 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 없다"며 '갈 길을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상됐던 일이였지만, 안 의원의 탈당 이후에도 '구당모임' 등 비노 그룹의 "문재인 사퇴" 목소리는 더 커졌다. 중립지대에 있었다고 보여지는 김부겸 전 의원까지 14일 개인 성명을 내고 안철수 탈당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문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문 대표 측근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문 대표는 사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기를 쓰고 '대표직'을 지킨 이유가 흔히 말하는 '대권 욕심'이 앞서서가 아니다. 친구이자 참모로 모셨던 노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과 좌절을 가장 근접한 거리에선 본 문 대표는 잘 안다. 노 전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본인이 대선 후보가 되기도 어렵거니와, 설혹 대권 후보가 되고 집권하더라도 '성공한 정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이런 이유로 문 대표는 '뺄셈 정치'를 감행하려 한다. 2002년부터 계속된 지리한 '당 내부 권력 투쟁'을 보건데, 2015년의 '뺄셈 정치'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세월호 사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노동 개악법 등 박근혜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을 새정치연합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야당 자체의 '보수화'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점도 이런 '뺄셈 정치'의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누구를 빼고, 누구를 더할 것인가다. '기준'과 '주체'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표는 2012년 총선이라는 한 번의 실패를 겪었다. 


또 안철수 의원과 결별로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김한길, 박지원 등으로 대표되는 구주류 세력과 정치적 필요에 의해 현재 '비노'로 묶였지만, 아직까지는 그들과 손 잡지 않았고, 애초 정치적 출발점도 상이하다. 문재인의 '뺄셈 정치'가 자칫 정치 보복이나 전횡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선 '미래 가치'를 담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막지 못한 것은 문 대표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문재인 대표는 더 어려운 고행의 길에 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명운이 달린 '뺄셈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그 과정과 결과에 따라 문 대표에겐 진정한 리더십이 완성될 수도 있고, 정치적 의미의 탄핵이 다가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