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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강준만-조성주 대담] ③ "정치의 메르스화, 저주를 풀려면…"

1995년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통해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 그는 이후 100권이 넘는 책을 쏟아낼 정도로 열정적으로 한국 사회와 '소통'해왔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싸가지 없는 진보>, <갑과 을의 나라>, <강남 좌파>, <개천에서 용 나는 안된다> 등 최근 낸 책 제목만 봐도 그의 문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강준만 교수가 '또' 책을 냈다.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인물과사상사 펴냄). 이 책에서 정당으로 쳐들어간 '청년'의 대표 주자이자, 기대되는 정치인으로 언급된 이가 바로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이다. 조 소장은 지난 7월 있었던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청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진보정치 2세대'를 표방하고 나와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이 지난 21일 강 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대담은 총 세 번에 걸쳐 기사화됐다. 세 번째 기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대담을 바탕으로 정당과 정치를 메르스처럼 여기는 정치혐오와 이를 개혁하기 위한 정치제도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이어 '싸가지 있는' 진보정치 2세대의 출현을 기대하며, 대담을 마무리했다.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고 대담을 진행했으며, 이명선 기자가 정리했다.


☞ 첫 번째 대담 : "386은 '창업 공신', 이제는 물러나라"
☞ 두 번째 대담 : "'한탕주의 '빠 정치', 배신을 부른다"


정당과 정치인은 메르스?


전홍기혜 : "정치혐오를 넘어서 정치저주가 일상화된 한국 사회"(<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107쪽)에서 정당과 정치인은 메르스가 됐다고 주장했다. 정당과 정치가 일반 대중에게 외면받는 수준을 넘어 격리조치 됐다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는 자신이 어느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을 밝히는데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일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 당시 김제동, 김미화 씨 등 정치적·사회적 발언을 한 방송인 몇몇은 자신이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중이 정당에 참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준만 : 정당 활동을 이원화해야 한다. 정당에 가입한 당원은 아니지만, 비판적 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오픈프라이머리 정도의 참여가 가능한 (정당) 투표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전홍기혜 : 과거 민주노동당에 '당우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현재 정의당에는 이 제도가 없다. 왜 인가? 

조성주 : '당우제도'가 부작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창당 당시 당원이 되기 힘든 사람들, 교사나 공무원이 일정 정도의 정당 일체감을 가지면서 법적인 부분은 피해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나도 두 사람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청년당원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조직(당 내 당(party in party))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의당과 100% 일치하는 당원은 아니지만, 최대한 넓게 조직해 이후 당원이 되는 방식이다. 독일의 '청년사민당'이 이런 모델이다. 사회민주당(SPD)과 청년사민당(Jusos)은 (정치적·사회적) 정체성이 조금 다르더라.


(☞ 관련기사 : 국민이 원하는 새정치, 평당원에 권한 부여해야)

강준만 : 그런 단계를 밟아야 할 것 같다. 

전홍기혜 :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라고 했는데, 정치와 거리 두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를 바꾸지 않는 한 무책임한 얘기가 될 수 있다. 

조성주 :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낙마한 뒤, "어떻게 정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했다. 정치인 스스로도 정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자 노력해야 한다. 정치도 충분히 로맨틱할 수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미디어도 적극적으로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언어가 그래서 중요하다. 

강준만 : 나도 과거에는 대중이 정치에 대해 투덜거리기만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요즘은 정치인이 대중의 참여를 '한사코 원치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픈프라이머리나 청년사민당 같은 이원화를 통해) 정당 문호를 열었을 때 대중은 정치인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이런 상황을 원할까? 

언론 문제는 심각하다. <한겨레>의 지난 21일 자 1면 기사 '"문재인 재신임"…새정치, 상처뿐인 봉합'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안과 관련해 엄청난 양의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정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사를 읽는 대중 입장에서는 독설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표가 뭐라고 했는지, 안철수 전 대표와 천정배 의원이 뭐라고 했는지,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같은 날 <한겨레>에 실린 ''구경꾼 민주주의'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언론의 보도 방식을 비판했다. "지금 우리가 정치를 보면서 평가하는 방식은 '관중 스포츠 모델'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입장료를 낸 구경꾼들이다. 따라서 영 시원치 않은 경기에 대해 비난할 권리가 있다. (중략) 언론은 그런 '소비자 민주주의'의 선봉에 있다."

(☞ 관련 기사 : [강준만 칼럼] '구경꾼 민주주의'를 넘어서)

정치 보도는 주로 '공급 중심'이다. 기사와 논평의 절반을 '수요 중심'으로 맞춰봐라. 아니면, 정당의 출입처 제도를 바꿔 '청년유니온'이나 '민달팽이' 같은 곳에 전담 기자를 출입시키던가. 그럼 청년의 정치적·사회적 활동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나오지 않겠는가. 신이 좀 날 것이다. 대중의 정치혐오를 부추기는데 언론도 한 몫한다. 음모론이긴 하지만, 혹시 언론도 정치가 정상화되고 혁신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웃음) 


'싸가지 있게' 쳐들어가자 


전홍기혜 : 대한민국 유권자가 그나마 '다른 정치'를 경험할 수 있었던 건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두 번의 민주당 집권과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하며 제3 정당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비례대표제 덕분이었다. 하지만 정의당은 지금 논의되고 있는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 같다. '비례대표 축소 반대' 농성도 나흘 만에 접었다. 


조성주 : 협상에 무게를 뒀다. 비판에 공감한다. 선거구제,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 역시 알리바이로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진보 정당이 자기 성장 전략을 제도 개혁에 매달리기보다 집단과 아젠다로 '뉴 파워'를 어떻게 영입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덩치를 키우면, 좋은 정치를 위한 제도 개혁의 모멘텀(momentum)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치혐오와 함께 허무주의가 커지고 있지만, 청년 중 정치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하지만 기존 청년 도전자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진보 정당 내 청년 할당을 쟁취하고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는 쪽에만 집중했다. '이 정당에서 뭘 하고 싶다'가 아닌, '청년비례대표에게 몇 %를 할당해 줄 것이냐?'라며 스스로가 유력 의원이나 계파에 줄을 섰다. 이런 식으로는 청년들이 정당에 쳐들어간다고 한들, 기존 정당을 강화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다.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나는 선거의 패배자다. 청년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집단(정당)에 들어가 부딪히고 깨져야 한다. 그건 패배가 아니다. 그 순간, 그 자체가 충격으로 기억될 것이다. 새누리당이든, 새정치민주연합이든 쳐들어갈 때는 명확한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들어가 무조건 세게 부딪혀야 한다. 싸워야 한다. 적극적 행동주의가 필요하다. 

강준만 : 제도개혁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감정(감성)적인 측면이 있어야 한다. 진보 정당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학력 차별은 이쪽이 더 심한 것 같다'고 비판하더라. 상식 수준의 말을 했다가 코너에 몰렸다는 것이다. 진보 정당일수록 일반 대중과 청년을 적극 유치하며 문턱을 낮춰야 하는데, 제도개혁 문제만 해도 멋있게 바꾸려고만 한다. 

'진보 싸가지' 문제를 제기한 것도 감성적 측면이었다. 그런데 못 알아듣더라. 인간관계에서 싸가지는 중요하다. 싸가지 없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좋은 얘기여도 듣기 싫다. 메시지를 마케팅하기 위해서는 싸가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진보는 '무슨 싸가지야, 메시지가 중요하지'라며 이성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럼,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도 한계가 있다. 

요즘 '행동경제학'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흔히 "너 왜 그렇게 감정적이야"라고 비판하지만, 인간은 허점투성이로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성에 호소할 것을 고민해야 한다. 정치개혁을 시도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진보는 마치 '이성 중독주의' 같다. 자꾸 이성 중심으로만 생각한다. 

전홍기혜 : 조성주 소장이 '진보정치 2세대'를 표방하고 나왔다. 그렇다면, 보수는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고 보나? "청년 정치가 꼭 진보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정의당뿐만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 모두 청년 정치의 텃밭이 될 수 있다"(183쪽)고 했는데…. 

강준만 : 청년 유입에 있어 두 당을 비교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제도적 차원에서는 좀 더 앞서 있다. 하지만 청년들이 그 안에서 자리 잡는 데는 새누리당이 더욱 유리한 문화적인 측면이 있다. 이익 중심의 보수 쪽은 정서 공동체로서의 성격이 진보 쪽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정치혐오 정서가 강한 지금은 보수와 같은 이익단체 모델의 일원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청년 입장에서 '청년의 이익이 침해당하고 있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정당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다. 과도기적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이 보수 정당에도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조성주
 : 이견 없이 동의한다. 청년이 진보 쪽에 들어갔을 때 오히려 올라가기는 어렵다. 예민한 문제지만, 진보 쪽일수록 파이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지 않는다. 한국의 보수는 위기 극복 능력이 뛰어나다. 이자스민 의원의 경우, 2012년 새누리당 비례대표 15순위로 국회에 들어왔다. 진보 정당의 관심사로 인식되어 오던 다문화 가정, 외국인노동자 문제 등을 보수 정당이 역공해 선점했다. 


지난 1월 <이코노미스트> 한국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터는 <중앙일보> 칼럼에서 "다음 혹은 다다음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동성애자를 지역구 혹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밀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 또한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보다 정치 세력으로는 더 잘 정돈되어 있어서다. 비판할 지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한국의 보수 정당은 좋아지고 있다. 청년 유입으로 더 좋은 보수, 유능한 보수, 부드러운 보수, 따뜻한 보수로 갈 가능성이 높다. 

강준만 : 청년들이 새누리당으로 많이 들어갈수록 보수 정당이 장기 집권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렇게 해서라도 국민에게 도움이 되면 좋은 건가? 새누리당이 좋아진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딜레마다.(웃음) 

10명의 조성주가 필요하다 

조성주 : '진보 정치 2세대'를 주장한 입장에서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를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되레 용기를 얻었다. 

진보 정당에서 정치하는 사람으로 좋은 정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동시에 청년들에게 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정치에 희망을 가지지 않으면, '헬조선'에서 탈출하기 힘들다. 정치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 

강준만 교수가 책에서 "'정치 효능감political efficacy', 즉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면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청년들에게 주기 위해선 작은 승리나 성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115쪽)며 미국 심리학자 칼 웨익의 논문을 인용했던 게 인상적이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무게감을 줄이고('별 거 아니군') 노력의 요구량을 감소시키며('이만큼만 하면 되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수준을 높인다('난 이것도 할 수 있잖아!')"

강준만 : 조금 다른 측면에서 "기존 정치혐오증에 편승한 운동 모델"(181쪽)인 '박원순 모델'을 비판했다. "박원순은 시민운동가 시절 시민운동가가 정치를 하는 걸 변절이나 타락으로 여기는 발상에 근거해 정치를 하지 않겠노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중략) 박원순은 그래놓고선 아무런 이론 교정이나 해명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국정원 탄압 핑계를 대면서 정치판에 뛰어들어 서울시장이 됐다."(181쪽) 

청년이든 누구든,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향력이라면, '시민운동을 하다가 정치에 뛰어드는 건 위선이 아니다. 바람직한 일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파해야 한다. 특히 진보 정당에 이런 인재들이 들어가야 한다. 시민활동이 과도기적 방법론이나 정치의 의인화를 앞세우는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조성주 소장과 같은 사람 10명만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가 아닌 대중을 좇아 전국을 헤집고 다니면 정치는 바뀐다. 

 

(이 기사는 이명선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



* [강준만-조성주 대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