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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강준만-조성주 대담]① "386은 '창업 공신', 이제는 물러나라"

1995년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통해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 그는 이후 100권이 넘는 책을 쏟아낼 정도로 열정적으로 한국 사회와 '소통'해왔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싸가지 없는 진보>, <갑과 을의 나라>, <강남 좌파>, <개천에서 용 나는 안된다> 등 최근 낸 책 제목만 봐도 그의 문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강준만 교수가 '또' 책을 냈다.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인물과사상사 펴냄). 이 책에서 정당으로 쳐들어간 '청년'의 대표 주자이자, 기대되는 정치인으로 언급된 이가 바로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이다. 조 소장은 지난 7월 있었던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청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진보정치 2세대'를 표방하고 나와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이 지난 21일 강 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두 시간 넘게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자기 성찰, 동시에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고 대담을 진행했으며, 이명선 기자가 정리했다.



고정된 진보, 언제까지 운동권인가


전홍기혜 : 강준만 교수와 조성주 소장 모두 '진보가 고정되어 있다'라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사실 진보 중 상당수가 현실을 외면한 채 자신들이 정해 놓은 정치적 노선만 좇으며, '나는 진보다' '진보정치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책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서도 "청년은 진보와의 결별도 불사해야 한다"(79쪽)고 말했다. 

조성주 : 1997년에 대학에 입학해 선배들을 따라 학생운동을 경험했다. 하지만 고립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진보운동에 대한 갈증이 컸던 것 같다. 동시에 '정치란 무엇일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2009년에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시대의창 펴냄)라는 책을 내면서 이런 문제의식이 조금 표출됐다. 다음 해 '등록금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로 딱 5년만 운동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청년유니온'을 만들었다. 그때 스스로를 현실주의 노선으로 전환했다. '진보라면, 내 눈앞의 현실부터 구체적으로 하나씩 바꿔보자'라고 생각했다. 

정의당 당대표 출마선언문을 쓰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후마니타스 펴냄)이란 책에서는 "한국의 사회 운동은 권위주의와 싸우던 '요새'에서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진출했지만, 정작 광장에서의 싸움에는 무력했다"(119쪽)고 비판했다. 그런데 지금의 진보운동은 '민주주의'라는 제도에서 쫓겨난 것 같다. 

강 교수가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 썼듯이 "당신 80년대에 뭐 했어?"(85쪽)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들(과거 운동권이었던 386세대가 지금은 586세대가 됐다), 혹은 전교조나 민주노총과 같은 조직이 있는 사람들만 발언권을 얻었다. 정작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려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발언권을 못 누렸다. 진보정당조차도 약자들의 발언권을 우선시하지 않고, 광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발언권만을 높이 평가했다. '이 구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라는 것이 진보운동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 같다. 

강준만 : 그 고민, 지금은 대기업이지만 구멍가게일 때부터 함께한 창업공신 문제와 비슷하다. 세상이 달라지고 회사의 규모가 커졌는데, 창업공신들은 어려운 시기를 헤쳐 왔다는 이유로 현재를 좌지우지하고 싶어 한다. 정치도 똑같다. 어려운 시절, 민주화운동에 투쟁한 사람들을 영원히 존경해야 하지만, 과연 이분들이 달라진 세상의 정치까지 쥐락펴락해야 할까? 아니라고 본다. 서울대 한상진 명예교수가 지난 17일 '창당 6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심포지엄과 18일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야당 내) 운동권 모두 물러나라'라는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공감한다. 보상의 문제로 가서는 안 된다.


(☞관련기사 : "운동권 출신이 黨 망쳐… 중도개혁으로 돌아오라")

386세대는 한국 정치를 지금도 운동권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본인이 머리로는 '세상이 달라졌으니 바꿔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몸에 밴 옛 모습 그대로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보면서 매번 느낀다. '왜, 이러지? 왜, 이러지? 결국, 안 되는 거구나.' 


조성주 :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우리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를 고민했다. NL도, 마르크스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아니었다. 기존의 틀(학생운동)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들었는데, 스스로를 뭐라고 규정해야 할 지 몰랐다. 오이디프스 적으로 얘기해 '부친살해'를 한 것 같다는 자조적 표현도 나왔다. 

지난 6월 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데올로기 없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민주화 경험이 없는 정치적 고아들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혈통을 주장하는 정치가 아닌, 고아들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하고 싶었다.


강준만 : "이데올로기 없이도"가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없어야만" 한다. 지금 진보가 처한 상황에서는 "없어야만" 바꿀 수 있다. "이데올로기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기보다는 이데올로기가 없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90쪽) 

이데올로기의 좋은 점이 무엇인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안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구조로 설정하는 순간, '우리는 무조건 노동 편이다'라는 식이다. 그럼, 문제가 안 풀린다. 정해진 편한 길로 가면서 '이데올로기 마케팅'을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해서는 안 바뀐다. 

조성주 : 책에서 인용한 "보수의 담론은 오히려 깨기가 쉬워요"(92쪽)라는 고려대 장하성 교수의 말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강준만 : 자신이 살아온 근거고 보람의 원천이고 생각의 틀인데, 무너뜨리고 다시 만든다고 하면, 경쟁력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 관념을 깨면, 출발선이 같아진다. 그렇게 되면, 현실 문제를 절박하게 느끼며 고민한 사람이 우위를 점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진보는 그걸 용납하지 못한다. "이데올로기가 없어야만"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데올로기가 풀리지 않는데,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조성주 : (웃음) 공감한다. 지나친 비장미(悲壯美)! 

강준만 : '우리는 옳은 길을 가고 있고, 저놈은 나쁜 놈이고. 그런데 우리는 지고 있고,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고.' 비장미다. 술자리에서도 '이 썩어 빠진 세상! 너희가 다 해 먹어라'라고 외치며, 상대적인 우월감을 만끽한다. 

조성주 : 그래서 정의당 당대표 출마선언문에 "용기 있는 타협"을 얘기했다. 축구에서 5대 0으로 지는 것과 3대 1로 지는 것이 어떻게 똑같은 패배인가. 강팀을 상대로 한 골이라도 넣어본 경험이 있어야, 다음 경기를 기대하며 만회할 수 있다. 세상과의 일전도, 사람의 인생도 늘 다음 경기가 있다. 


(☞ 관련기사 : 조성주 "진보의 대안은 용기 있는 타협") 

단적인 예로, 지난 13일 노사정이 노동개혁안에 합의하자 진보진영에서는 '노동재앙이 열렸다'며 '재앙이 왔으니까 총 단결해 투쟁해야 한다. 큰 싸움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 달이면, 노동자 조직이 문을 닫나? 진보정당이 사라지나? 아니다. 존재한다. 대중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재앙이라더니, 너희는 여전히 남아있네'라고 비판할 것이다. 

강준만 : 대중은, 유권자는 믿지 않는다. 공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알리바이 '기울어진 운동장' 


조성주 :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강 교수님의 비판에 공감한다. 진보진영의 알리바이(alibi)가 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어차피 안 돼. 그러니까 거리로 나가야 해'라는 식이다. 얼마나 편한 논리인가.

강준만 : 우화 <양치기 소년>이 자꾸 떠오른다. '재앙' 수준의 말을 쏟아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혁신'을 외친 게 벌써 몇 번째인가. 사람들이 다 웃는다. <조선일보>가 지난 21일 자 사설에서 "지금 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당사자들도 모르지는 않는 것 같다"며 "당 내부에서도 "코미디 같다"는 말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관련기사 : [사설] '관심 없는 코미디' 野대표 재신임 갈등)

신뢰의 문제다. 아무리 진보적인 언어를 구사해도 대중은 믿지 않는다. 정치인의 언어를 이해하는 유권자의 수준이 비판적인 지점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아주 높다. 야권이 주장하는 복지 문제만 해도, 유권자들은 바로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유권자는 보수정당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전홍기혜 : '기울어진 운동장'이 야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rhetoric)'이 됐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보수에 비해 가진 게 없다는 것은 앞서 논의한 '고정된 진보'의 문제를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 민주화 운동에는 기여했으나, 현재는 시대착오적 인물이 된 사람들의 '명예로운 퇴진' 또한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강준만 : '기울어진 운동장'에 타당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몇몇 정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의 해석이다. 유권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모든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야권과 진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똑같은 놈들'이라고 말한다. '정치하는 놈들은 출세한 놈들'이라고.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지난 17일 국정감사에 나와 미소를 지으며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 대표자들 앞이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치든 재벌이든 그 어떤 권력이든 '종이 짱돌(표)'로 바꿀 수 있다. 

조갑제 씨가 과거에 '택시 기사들은 무조건 야당만 찍는다'라고 했다. 새누리당(한나라당)도 아니고,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도 아니다. 택시 기사들이 야당만 찍는 이유는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차피 돌아가면서 권력을 쥐는데, 그나마 번갈아 가면서 해야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는 논리다. 유권자에게 정치인은 여야 할 것 없이 동급인데,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을까? 없다. 

진보진영을 포함한 야권의 문제 중 하나는 분석하는 사람들조차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경꾼을 앞에 놓고 자기들만의 분석을 펼친다. '유권자는 이 사안을 어떻게 볼까?'를 왜 생각하지 못하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정치적 공동체라는 입장인데, 아니다. 우리 공동체다. 이 사건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아무 관련이 없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마당에,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어도 야권에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지 않겠는가. 다툼의 소지가 많을망정, 청년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아젠다를 제출한 쪽이 어디인가. 야당은 무슨 제안을 했나. 그저 집권여당을 반대하느라 바쁘다. '재앙'이라며 날 선 언어로 비난만 하지, 의견을 낸 게 뭐가 있나. 너무 시대착오적이다.

 

(이 기사는 이명선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


* [강준만-조성주 대담] 2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