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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안철수

'아웃팅' 1년 안철수, 이젠 '커밍아웃'을 하라! (2012.9.3)

안철수, '아웃팅'을 당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하 직함 생략)이 정치권에 등장한 지 꼭 일년이 됐다. 따지고 보면 안철수가 정치권에 발을 딛게 된 건 일종의 '아웃팅(outing)'이었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하나로 거론되던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정치도박'의 결과로 예정에 없던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2011년 10월 26일 생기면서 정치권 밖에 있던 그가 호명되기 시작했다.

2011년 9월 1일 <오마이뉴스>에서 그의 측근이 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본인도 아닌 측근을 통해, 그것도 출마를 결심한 것도 아니라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하지만 이 정도 뉴스만으로도 정치권은 발칵 뒤집어졌다. 진실은 안철수 본인만 알겠지만, 출마 결심이 서고 본인이 직접 밝히기 전에 출마 보도설이 흘러나왔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분명 '아웃팅'이다. (여론을 떠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측근을 통해 기사를 흘린 것이라면 엄청난 꼼수라 할 수 있다.) 떠밀리다시피 정치권으로 진입한 안철수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늘 반복됐다.

첫 번째 질문 : 진짜 나오냐, 언제 나올 것이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빠른 시일 내에 분명하게 했다. 그의 첫 번째 공식 정치 행보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개인적 차원의 후보단일화 기자회견이었다. 안철수는 정치 경험이 전무한 데도 출마검토설이 나오자 단박에 50%를 웃도는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또 한 명의 시민후보인 박원순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단일화 여론조사와 같은 수순을 밟은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채 30분도 안 되는 짧은 회동을 가졌고, 기자회견 자리에서 "저는 박 변호사가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운동의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흔쾌히 출마 포기 의사를 밝혔다. '지분 나누기'와 같은 조건이나 뒷거래도 없었다.

안철수의 두 번째 공식 정치 행보는 2011년 10월 24일 서울시장 선거를 목전에 두고 박원순 지지 방문을 한 것이다. 박원순이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 측의 검증 공세로 수세에 몰리면서 승리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안철수는 "상식에 기반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변함없다"면서 "시민들도 그 판단 기준으로 선택하시기를 바란다"며 지지의 뜻을 담긴 편지를 전했다. 이틀 뒤 박원순은 나경원을 누르고 서울시장이 됐다.

이 두 번째 행보로 안철수는 현재까지 야권 1위 대선 주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첫 번째 행보에서 그쳤다면, 그의 서울시장 후보 자리 양보는 말 그대로 '안 나온다'는 답변으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행보를 보고 많은 이들이 서울시장 이후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고 생각했다. 새누리당 뿐 아니라 언론 등 보수진영의 집중 공격으로 수세에 몰리던 시점에 안철수가 극적으로 등장했다. 이를 통해 안철수는 선거 기간 내내 열심히 도운 민주당을 제치고 '서울시장 박원순'을 만든 일등공신이 됐고, 여도 야도 아닌 '제3 후보'로 대통령 선거 다음으로 큰 선거에서 이기는 선례를 완성시켰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이 시작됐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캠프를 찾은 안철수 ⓒ프레시안(최형락)


두 번째 질문 : 정치인 안철수는 누구인가

단 두 번의 공식 정치 행보로 유력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그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기존 정치문법에서 벗어난 행보를 보였다. 기성 정치인과 다른 모습에 대중들은 오히려 열광했다. 정치권 밖의 새 인물을 선호하는 경향은 안철수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하지만 국정 운영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자리에, 그것도 정당이나 세력 기반이 전무한 개인이 유력 후보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분명 초유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치인과 다른 화법과 행보를 구사하는 안철수에 대한 선호나 환호와 실제 대선 투표장에서 그를 찍을 것이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들도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안철수가 보여준 '능력'은 의사, 컴퓨터 백신 전문가, 사업가, 교수로서의 능력이지 정치인으로서는 아니다. 'CEO 리더십', '경제 대통령'을 앞세웠던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기업가와 정치가의 '성공'은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안철수가 '어떤 정치인'인지 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두 번째 질문에 안철수는 아직 절반만 답했다. '도대체 언제 나올 것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다소 지루하게 진행되던 와중에 나온 <안철수의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7월19일 출간된 이 책은 초판 4만 권이 이틀 만에 매진되는 등 예상됐던 '열풍'을 불러왔다. 8월 31일 현재 <안철수의 생각>은 52쇄까지 찍은 상태이며, 57만 부가 출고됐다고 한다.

안철수는 커밍아웃할 것인가

<안철수의 생각>을 내고 여야 유력 대권주자들인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출연했던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하고 "소규모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지만, 아직 결정적으로 정치인 안철수의 '커밍아웃'은 진행되지 않았다. 책이 나온 직후 쓴 칼럼(바로보기 : '안철수 현상 시즌 2'는 시작되지 않았다)에서도 지적했지만, '좋은 생각'만으로 '좋은 정치인', '좋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이 나온 시점보다 현재, 2012년 대선에서 그의 역할은 더 명확해졌다. 새누리당 후보인 박근혜에 맞설 것인가, 아닌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이 어느정도 예상된 '흥행실패'가 거듭되면서 그의 입장에 관심이 더 쏠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함세웅 신부 등 범야권 시민사회 원로들의 모임인 '희망2013 승리 2012 원탁회의'가 안철수에게 야권의 대선 승리를 위한 '책임'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 단적인 예다. 원탁회의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안 원장에게 공식 출마선언을 서두르라고 다그칠 생각은 없다. 다만 이제는 그가 돌아설 수 있는 시점이 지났으며 설혹 야권 단일후보가 안 되더라도 '안철수 현상'의 역동성을 최대한으로 살려 민주세력의 공동승리에 확실한 공헌을 할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못박았다.

모바일투표를 둘러싼 불공정 논란 등 민주당의 지지부진이 전적으로 그의 탓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당 밖에 가장 유력한 주자가 존재함에 따라 민주당 경선이 '준준결승' 정도로 격하될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이번 대선에서 그의 '커밍아웃'의 본질은 민주당과 관계 설정이다. 현재 정체성과 리더십 모두 '실종'된 상태이지만 민주개혁세력의 고된 '역사적 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민주당을 어떻게할 것이냐는 그의 대선 승리와도 직결된 문제다. 보수가 상수인, 게다가 박근혜라는 강한 후보가 버티고 있는, 현 정치지형에서 다시 한번 '박원순 모델'을 통한 승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서울시장과 대통령 선거는 다르다.
지금 당장 민주당에 들어가란 얘기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민주당을 허무는 방식이기를 더 원하는 유권자들도 분명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민주당 개혁에 대한 좀더 책임있는 견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민주당 내 일부 세력의 반발로 대선은 최악(?)의 구도로 진행될 수도 있다. 안철수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판은 그렇게 짜여졌다. 이를 원하는 구도로 만드는 것은 정치인 안철수의 능력이다.

이런 의문을 깨끗이 씻어야 '정치인 안철수는 누구인가'라는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일년간 한국사회에 던져진 '안철수 현상'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긍정적인 작용으로 종결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