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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안철수

안철수의 뿌리는 정몽준이다(2012.3.30)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가 아닌 '제3의 후보'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2012년 대선의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다. 그가 27일 "사회발전을 위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면 정치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29일엔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민주통합당 도봉갑 후보,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변인이었던 송호창 민주당 과천.의왕 후보가 안 원장이 보낸 지지 메시지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당장 눈앞에 벌어질 전투야 2주 앞으로 다가온 4.11 총선이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넘나드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안 원장의 정치 행보의 파장은 간단치 않다. 대선 뿐 아니라 총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2002년 정몽준, 2007년 문국현, 2012년 안철수

'안철수 현상'의 연원을 따져 올라가면 정몽준이 보인다. 안철수 원장은 2002년 대선 때부터 계속 되고 있는 야당에 가까운 '제3의 후보'라는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새누리당 대선주자 중 하나이지만, 2002년 대선 때 정몽준 의원은 '반부패 국민통합'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제3의 후보'였다. 현대중공업 회장 출신인 그는 2002년 6월 '월드컵 신화'를 기반으로 뒤늦게 대선가도에 합류했다. 같은 달 있었던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패'하자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정몽준 의원은 이 틈을 타고 대안 중 하나로 부상했다. 정 의원은 민주당 입당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관망하다가 8월 신당 창당과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뒤 9월17일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김민석 전 의원 등 당시 비(非)노무현 세력의 정치인들이 정몽준 신당에 합류했고, 출마선언과 동시에 지지율 1위 후보로 올라섰다가 대선이 다가올수록 서서히 지지율이 빠지다가 결국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2007년 대선에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의원이 야당 성향의 '제3의 후보'였다. 유한킴벌리 사장 출신인 문 전 의원은 2007년 초부터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거론되다가 5월 진보진영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를 명분으로 '미래구상'을 조직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문 전 의원은 8월23일 '사람중심의 진짜 경제'를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대선 출마 선언을 했고, 9월 '창조한국'(현 창조한국당)을 띄우면서 독자 노선을 본격화했다. 민주신당, 시민사회세력 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단일화 압박을 받았지만 문 전 의원은 완주를 택했다.

정몽준, 문국현. 언뜻 보기에 안 원장과 전혀 다른 이들은 그래서 공통점이 있다. 안 원장이 대선을 8개월 앞둔 현 시점까지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앞의 두 사람 사례를 보건데, 안 원장은 전혀 늦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여름이 지나서야 출마 의사를 명확히 했다.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제3의 후보' 입장에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최대한 관망하다 여야 모두 판이 짜여졌을 때,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뉴시스

'성공신화'에 기반한 '제3의 후보'

또 세 명의 공통점은 CEO 출신이라는 점이다. 정몽준은 대기업, 문국현은 중소기업, 안철수는 벤처기업 등 기업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세 명 다 경영자 출신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연발하는 이명박 대통령도 CEO 출신이다. 경영자 출신은 기업체라는 가시적 성과물 때문에 '능력'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에 가장 유리하다. 안 원장이 27일 "누가 정권을 잡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올라가야지, 승리하는 데만 집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런 자신감을 보여준다. 나름의 '성공신화'를 갖고 있다는 것도 세 사람의 공통점이다.

기존 정치와 정당에 대한 불신이 정치적 자산이라는 점도 세 사람의 공통점이다. '탈이념'을 표방하면서 기존의 보수와 진보라는 틀로 자신들을 재단하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념적 구분을 들이대는 관점을 '과거'나 '구태', 자신의 철학을 '미래'로 규정한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표방하는 가치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함축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안철수는 정치적 기술로는 '소통'과 '공감', 가치로는 '상식'이라는 잣대를 들고 나왔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안철수 현상을 떠받치는 것은 강남 좌파로 상징되는 엘리트 그룹 뿐 아니라 경제적 약자들"이라면서 "서민층이 자신들의 경제적 욕구를 대변할 인물로 '제3의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위 '낙수효과'를 주장하면서 부유층을 대변하는 경제정책을 펴온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민주통합당 등 야권에서는 자신들의 경제적 여건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보여지는 인물이 없다는 것. 한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의 경제질서에 대한 불만이 현재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있고 이런 층에서 안 원장에 대한 기대가 큰 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야권의 유력한 대권후보인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의 이미지는 '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안 원장은 더 경쟁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경제적 약자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투영된 '제3의 후보' 현상은 실제 통계지표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한 연구위원은 "97년 IMF 경제위기 매년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IMF 이전까지 가장 중요한 의제를 물으면 정치개혁이 가장 많았는데, 97년 이후 경제 문제로 돌아섰다"고 지적했다.

경제-사람중심 경제-소통과 공감의 경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2002년 대선에서부터 등장한 '제3의 후보'인 정몽준, 문국현, 안철수, 세 사람은 경제에 대한 변화 욕구가 투영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들이 모두 CEO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욕망이 투영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경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어떤 경제냐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시대정신'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재벌 출신의 정몽준이 '경제 살리기' 정도의 이미지라면 문국현은 '사람 중심의 경제', 안철수는 '소통과 공감에 기반한 경제(복지)'를 상징, 표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제3의 후보'들은 진화하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안 원장의 행보에 있어 중요한 것은 대선 출마 여부가 아니다"며 "발언에 복선을 깔고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발언한 그대로 '사회발전에 대한 기여'가 거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안 원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통과 공감, 그리고 시민적 상식"이라면서 "정치권의 흐름이 시민적 상식에 위배되면 발언을 하고 직접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