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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김대중

DJ "왜 부시만 북한과 대화 못 하겠다는 거냐"(2006.10.19)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전쟁 중에도 북한과 대화해 1953년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닉슨 대통령은 '전쟁 범죄자'로 규정된 중국을 방문해 모택동을 만나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어냈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했지만 그 악마의 제국과 대화해 소련과 동구라파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이들은 모두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들이다. 왜 같은 공화당 출신인 부시 대통령만 북한과 대화를 못 한단 말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일 "도대체 핵 문제의 양 당사자 간에 대화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양자대화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북 핵실험은 북한과 미국 공동 책임"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대 통일연구소 초청 특별 강연에서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거부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북한 핵실험은 북한과 미국의 공동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미국의 책임 문제와 관련, "미국의 목표가 핵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북한의 체제를 바꾸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 정부의 지도자조차 나와 북한의 경각심을 극도로 자극하고 핵의 제조까지 강행하는 빌미를 줬다"면서 부시 대통령을 거듭 비난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5년 5월 "새로운 전투의 시대에 우리는 국가가 아니라 정권을 공격 목표로 삼을 수 있다"며 노골적으로 북한 김정일 정권 붕괴를 겨냥한 초강경 발언을 하는 등 대북 강경 발언을 여러 차례 했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책임'에 대해선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면서 번번이 6자회담의 참가를 거부함으로써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이는 북한의 강경정책을 구실로 사태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햇볕정책 실천할 때 미국과 긴밀히 협력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북한 핵실험 이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등에서 '햇볕정책'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나는 햇볕정책을 실천할 때 미국과 긴밀히 협력했다"며 "재임 중 클린턴 대통령에게 설명해 클린턴 대통령은 전적으로 지지하고, 공개적으로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시대에 들어와서 사태는 일변했다"며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2년 2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 △북한과 대화하겠다 △북한에 식량지원을 하겠다는 세 가지 합의를 했다"며 "그러나 이 중요한 합의는 실천되지 않았다"고 거듭 부시 대통령을 비난했다.

"북한 경제적 시련에 익숙해 있어"

김 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관련해 "잘 알다시피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통해 경제적 시련에는 익숙해져 있다"며 "미국이나 일본 등은 이미 상당 부분의 경제제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또 다시 제재할 수단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경제 제재는 고통은 주겠지만 북한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오히려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이나 휴전선에서의 도발 등 반격에 나올 가능성도 크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핵 문제 해결책으로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한반도 비핵화 체제에 동참해야 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그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적 제재를 해제하고 국교를 열어야 한다"며 "이는 북한과 미국이 정말로 해결할 의지만 있다면, 그리고 무릎 맞대고 같이 대좌한다면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대화를 통한 해결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밝혔다.

"유엔결의안엔 PSI 참여 문제는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일 서울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여문제와 관련해 "유엔 결의안에 PSI 참여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는 이미 옵저버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적절한 선에서 정부가 처리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을 방문해 반기문 외교장관과 회담을 가진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은 한국이 PSI활동 전반에 좀더 실질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고,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현재 남북간에 체결된 해운합의서로도 충분하다며 납북대치 상황을 고려해 신중한 참여를 주장했다.

당초 '21세기의 도전과 한국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이날 강연은 김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북한 핵과 햇볕정책'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작심한 듯 최근 북핵 사태와 그 파장, 조지 W.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쏟아낸 김 전 대통령은 제출된 질문지 가운데 5명을 선발해 이뤄진 질의응답 시간에도 햇볕정책의 정당성과 북미간의 대화의 필요성, 군사적인 행동에 대한 우려를 얘기했다.
▲ 19일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프레시안

"전쟁 걱정 없는 것, 다 햇볕정책 덕"

김 전 대통령은 최근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전쟁불사론'을 의식한 듯 "찰리 채플린이 전쟁을 반대하면서 '전쟁터에는 전쟁을 결정하는 40대 이상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소개한 뒤 "전쟁이 나면 여러분과 같은 젊은이들만 피해를 입는다"고 우려했다.

햇볕정책의 실효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옛날 같았으면 북핵사태가 벌어지면 사람들이 전쟁 걱정을 많이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다"며 "미안한 말이지만 그게 다 햇볕정책 덕"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답에 청중의 박수가 쏟아지자 그는 "햇볕정책의 덕을 입은 젊은 여러분은 마땅히 박수를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북핵 사태 이후 불거진 여러 쟁점들에 대해서도 김 전 대통령은 입장을 밝혔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의 중단 요구와 관련해 김 전 대통령은 "서독은 매년 32억 달러를 동독에 줬는데 우리가 북한에 주는 돈은 민관 합해서 1억 달러에 불과하다"며 "서독이 돈을 많이 줘서 결국 동독에게 망했느냐"고 경협이 중단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활발한 강연과 인터뷰 등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은 "나처럼 나이 먹고 국정에도 참여했던 사람은 어떻게든 전쟁을 막고 평화적으로 통일의 날을 앞당기는 것이 죽기 전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최근의 활발한 행보의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김 전 대통령의 특별강연은 400여 명이 자리할 수 있는 서울대학교 문화관 중강당을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로 인해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강연 한 시간 전부터 모든 좌석은 앉을 자리가 없었으며 계단과 무대 앞, 통로를 모두 채우고도 자리가 부족해 많은 학생들이 강연장에 들어서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그는 강연에 앞서 "무당은 복채가 많아야 신이 나 듯이 강연자는 청중이 많아야 신이 난다"며 "입추의 여지가 없이 와주셔서 감사한데 아직 못 들어 온 사람들이 많으니 무대 위로 더 올라오라"고 말했다. 이에 보안이 삼엄하기 마련인 전직 대통령의 강연에서 김 전 대통령의 1m 앞까지 학생들이 무대 위에 앉아 김 전 대통령의 강연을 경청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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