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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국음식에 막걸리…'좌파 신자유주의'식 불협화음(2006.4.1)

기름진 중국 음식에 텁텁한 막걸리.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일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 재계5단체장을 부부동반으로 청와대에 초청해 가진 오찬간담회는 중국식 요리에 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인 것이었다고 한다.

***"쌀개방 문제 때문에 막걸리를 반주로"**

노 대통령은 이날 오찬회동에서 막걸리를 반주로 내놓은 이유에 대해 "처음에는 복분자주, 그 다음에 포도주를 하다가 최근에 쌀 수입 개방 문제 때문에 쌀을 좀 소비하도록 해야겠다고 해서 막걸리로 바꿨다"고 밝혔다. 전날 3부요인 및 헌법기관장과 만찬간담회에서도 막걸리가 반주로 나왔다.

노 대통령이 비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어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 때문에 못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농민들의 반대에 개의치 않겠다는 뜻을 밝히긴 했지만 막걸리를 반주로 내놓을 만큼 농민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오찬간담회는 노 대통령이 이해찬 전 총리 낙마 이후 본격화한 '대화정치'의 일환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최근 '대화정치'를 위해 만찬간담회 등 '식탁정치'를 재개한 노 대통령은 식탁에 올린 음식 하나에도 그렇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나 보다. 이런 차원에서는 막걸리가 중식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좌파 신자유주의' 청와대에서 쏟아지는 불협화음**

문제는 최근 청와대가 쏟아내는 불협화음이 그런 요리와 술의 궁합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 대통령이 지난 3월 23일 '인터넷 국민과 대화'에서 천명한 '좌파 신자유주의'다. '둥근 사각형'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형용 모순인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노무현 정부의 새로운 자기규정은 양극화 해소와 한미 FTA라는 모순된 두 가지 정책 과제를 제시하면서 만들어진 표현이다.

최근 청와대에선 양극화 해소를 역설할 때와 한미 FTA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 서로 모순된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정우 대통령 정책특보는 지난 달 30일 <청와대 브리핑>에 '시장맹신주의와 성장지상주의를 극복하자'는 글을 기고해 "40년 우리 머리를 지배해 온 '선성장 후분배'의 철학을 이제는 폐기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지난 달 23일 국민과 인터넷 대화에서 한미 FTA에 대해 "성장을 위해 적극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미 FTA는)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종의 (외부) 쇼크요법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주장이 '선성장 후분배'의 철학과 현실적으로 얼마나 다른 것인지 한미 FTA의 피해자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또 <청와대 브리핑>은 '교육 양극화, 그리고 게임의 법칙'(3월 16일), '건강 양극화와 빈곤의 악순환'(3월 22일) 등의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과 의료 분야에 있어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미 FTA를 통한 의료, 교육 시장 개방이 의료와 교육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학자들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서로 모순된 걸 조화시키는 게 정치"라지만…**

이런 '불협화음'에 대해 노 대통령은 "서로 모순된 걸 조화시키는 게 정치"라며 "양극화 해소와 한미 FTA는 우리 경제가 선진경제로 가는 양 날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봐도 양쪽 날개의 무게가 현저히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미국 무역촉진법(TPA) 만료 기한 내에 협상을 끝내야 한다며 1년 안에 한미 FTA 협상을 체결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정부 경제정책라인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 사석에서 '정부가 한미 FTA를 졸속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일부 준비에 미흡한 것은 사실이며 협상 과정에서 세부적인 사안으로 가면 준비 부족이 드러날 수도 있다"며 문제를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이는 우리 정부의 현재 수준"이라며 "1년 뒤 좀 더 충분히 준비한 뒤 협상을 시작하면 그런 부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지금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었다.

과연 이런 정부가 1년 안에 서로 다른 무게의 날개를 조정해 가며 순조로운 비행을 준비할 수 있을까? 비유하자면, 혹시 되지도 않을 음식궁합 고집하기보다 중국식이 좋으면 막걸리를 다른 술로 바꾸고, 굳이 막걸리를 마시고 싶으면 식사를 다른 종류로 바꾸는 식의 방향을 분명히 하는 선택이 보다 현명한 것은 아닐까? 노 대통령이 선택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