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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성의 몸이 전쟁터로..美 텍사스주 낙태 금지→허용→금지→?

[워싱턴 주간 브리핑] '진보 대 보수' 싸움이 된 낙태 이슈...보수 우위 연방대법원,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나

임신 6주 후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미국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이 다시 허용됐다. 지난 6일(현지시간) 텍사스 오스틴 연방지방법원이 텍사스주의 법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효력 중지 결정을 내린지 이틀 만이다.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낙태금지법'인 텍사스의 낙태금지법은 사실상 임신 6주 후 모든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강간이나 근친강간 피해자의 경우에도 예외가 없다. 이 법이 소송 권한을 주정부가 아닌 일반 시민에게 위임해 일반 시민이 낙태를 시행한 의료기관이나 이에 도움을 준 이들을 상대로 이길 경우 최소 1만 달러(약 1200만원)를 받도록 한 것도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로 임신 24주까지 임신 중단을 허용한 바 있다.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은 이를 전면 무력화한다.  

미국에서 낙태 문제는 줄곧 논쟁적 이슈였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권을 거치는 동안 극우주의자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 갈등적인 이슈가 됐다.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이 자유주의 진영과 이른바 '문화 전쟁'(Culture War)을 벌이겠다고 선언하고 나서면서 여성과 아동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낙태와 인종차별 교육 등은 극우주의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는 이슈들이다. 

텍사스 낙태금지법, 효력 중단 결정 이틀만에 다시 재개 결정 

미국 뉴올리언스 제5연방항소법원은 8일 텍사스주 낙태금지법의 효력을 일시 중단한 연방지방법원의 명령 집행을 중단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지난 6일 연방지방법원의 판결이 난 후 텍사스주의 항소에 대한 결정이다.

제5연방항소법원은 이전에도 낙태금지법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텍사스주는 연방지방법원의 판결이 "주 법원 운영에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고, 법원은 추가 변론이 있을 때까지 이 법안의 효력은 재개되며 법무부가 내주 화요일(12일)까지 답변하라고 명령했다.  

앞서 연방지방법원의 로버트 피트먼 판사는 바이든 정부 법무부가 텍사스주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13쪽에 달하는 결정문을 통해 이 법안이 여성의 권리를 "공격적으로 박탈"하고 있다면서 효력 중지 결정을 내렸다. 피트먼 판사는 오바마 정권에서 임명됐다. 연방법원의 결정이 발표되자마자 백악관은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텍사스주가 곧바로 항소를 제기해 다시 낙태금지법 효력이 되살아났다. 텍사스주의 낙태 제공 의료기관들은 수술 재개 하루 만에 다시 접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법무부의 추가적인 조치로 12일 이후 상황이 변할 수도 있지만, 텍사스의 낙태금지법은 소급 적용을 명시하고 있어 상당 수의 낙태 클리닉은 수술을 감행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텍사스 지역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9월 낙태금지법 시행 이후 텍사스의 24개 낙태 클리닉의 환자수는 평소에 비해 80%가량 줄었다. 동시에 오클라호마 등 인근 지역의 낙태 클리닉에 환자들이 몰리고 있다. 이웃 주로 이동해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정보로부터 소외됐을 뿐 아니라 시간과 돈의 여유도 없는 미성년자, 저소득층, 이민자, 시골 지역 거주자 등이 법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트럼프가 만든 '보수 절대 우위' 연방대법원,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나? 

텍사스주는 공화당이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을 모두 장악한 '레드 스테이트'다. 텍사스주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정치적 어젠다인 낙태 반대, 이민 반대, 마스크 착용 및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 비판적 역사 교육 반대 등을 주정부의 권한을 이용해 가장 적극적으로 정책화하고 있다. 

소위 '심장박동법'도 이런 정치 지형에서 나온 법이다. 일반 시민에게 소송 권한을 위임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이 위헌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인데, 이런 무리한 조항까지 집어 넣은 것은 낙태 반대론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이다.

텍사스주 뿐 아니라 아칸소, 플로리다, 인디애나, 미시시피, 노스 다코타, 사우스 다코타 등 공화당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주에서 낙태를 제한하는 법안을 이미 통과시켰거나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텍사스의 낙태금지법안을 둘러싼 주정부와 연방정부, 공화당과 민주당, 트럼프 (지지자)와 바이든 (지지자)의 공방이 벌어지는 것은 이 법이 미칠 파급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결국 논란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통해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낙태 옹호 운동가인 낸시 노덥 재생산권리협회 회장은 8일 발표한 성명에서 "대법원이 개입해 이 광기를 막아야 한다"면서 "법원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을 막을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미시시피주의 낙태금지법에 대한 위헌 여부에 대한 심리를 12월 1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현재 9명의 연방대법원 중 6명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4년 임기 동안 무려 3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대법관들의 정치 성향이 보수 6 대 진보 3으로 변했다. 특히 대선 직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 강행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강경한 낙태반대론자다. 

앞서 연방대법원은 지난 8월 말 낙태 옹호 단체들이 텍사스의 낙태금지법 시행을 막아달라며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기각하기도 했다. 

▲ 지난 9월 1일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이 발효된 날, 여성들이 이 법에 대한 반대하며 텍사스주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AP=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01104172298111#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