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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이 '전체주의 국가'?...워싱턴에서도 '여의도 정치' 하는 한국 정치인들

[워싱턴 주간 브리핑] 여야 대표의 동시 미국 방문이 걱정되는 이유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가족이나 친지를 방문하는 추석 주간에 한국 정치인들은 대거 미국을 방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차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방미한다. 유엔총회가 열리는 뉴욕에서 머물다 독립유공자 추서식 및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에 참석하기 위해 하와이로 이동했다가 귀국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9일부터 24일까지 미국을 방문한다. 문 대통령의 방미를 측면에서 지원하고 미 행정부와 의회 인사들을 만나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개 방안을 모색하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김영호 대표 비서실장, 이용빈 대변인, 김병주 의원 등이 동행한다고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2일부터 27일까지 방미한다. 미국 워싱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을 돌며 다음달 10일 시작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외 부재자 신고기간에 맞춰 해외 동포들의 대선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정진석 국회부의장, 허은아 대변인, 서범수 대표 비서실장, 김석기, 조태용, 태영호 의원 등이 동행한다고 밝혔다.

작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뜸했던 정치권의 외국 방문이 백신 접종으로 어느 정도 안전판이 확보되면서 다시 활발해지는 모양새다. 물론 한미 양국 정치인들 사이의 교류가 늘고 인맥이 쌓이고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의원 외교에서 '외교'가 아니라 '정치'를 앞세울 때 부작용이 생기고 그 피해는 국민들이 입게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美 하원 대북전단법 청문회의 교훈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다. 정당 뿐 아니라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극한 대립이 존재한다. 미주 한인들 사이에서도 지지 정당을 기반으로한 정치적 양극화가 존재한다. 이런 '여의도 갈등'이 근래에 워싱턴 정가에서 엉뚱하게 불붙은 이슈가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청문회'였다.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지난 4월 15일(현지시간)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화상 청문회("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 한반도 인권에의 시사점")를 열었다. 이날 청문회는 지난해 연말 한국 국회에서 통과된 대북전단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해 열렸다. 

한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을 놓고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를 벌이는 다소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한국의 극우 정치세력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미주 한인들과 미국 극우인사들을 부추겨 발생했다. 이들은 랜토스 인권위원회 공동 의장인 공화당 크리스 스미스 의원 등에게 로비를 해 문제 의식을 심는데 성공했다. '표현의 자유'는 미국에서 개인의 권리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제다. 

당초 중국 인권 탄압 문제의 곁다리 격인 이슈였는데 대북전단법으로 단독 청문회를 할 정도로 문제가 커진 데에는 한국 여당과 그 지지세력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이분법적 사고로 랜토스 위원회와 스미스 의원을 재단해버리면서 이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한국 통일부는 청문회를 앞두고 랜토스 위원회에 대해 "의결 권한도 없고 정책 연구모임 성격이 가깝다"고 폄훼하는 발언을 공식적으로 했고, 여권 의원들 사이에서도 "주권 침해"라는 노골적인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랜토스 위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에 의한 유태인 대학살) 생존자인 톰 랜토스 전 하원의원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의회의 동의를 받아 설립된 초당적 위원회다. 의원들이 "정책 연구모임" 차원에서 설립하는 코커스와는 위상이 다르다. 랜토스 전 의원은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의원이며, 스미스 의원도 당시 결의안에 찬성했다. 스미스 의원은 공화당 의원이지만 '인권 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애정을 가진 합리적 정치인으로 평가 받는다. 이런 역사와 맥락을 무시하고 대북전단법에 반대하니까 '극우' 내지는 '반대 세력'으로 놓고 비난하고 폄훼하는 방식은 '여의도 정치'를 벗어나지 못한 태도다. 

극우 세력 역시 대북전단법 청문회에서 청문회 주제와는 무관하게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데 치중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얼마나 부실한 지 보여줬다. 청문회 증인 자체가 대북전단법 반대 4명, 찬성 2명으로 반대 측에 유리하게 짜여졌는데도 말이다. 이인호 전 주러시아 대사는 "촛불혁명은 (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잡기 위한) 사악한 기획이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이 전체주의화 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미국 보수논객 고든 창은 "문재인 정부가 공포의 통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날 청문회에서 오랫동안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 활동을 한 전수미 변호사가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증언하면서 극우세력이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왔다. 전 변호사는 청문회에서 "대북전단 때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고 울부짖는 탈북자들을 자주 본다"며 "북한 주민은 이미 외부 세계에 대한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고 있으며 전단 살포는 북한 내부의 인권을 개선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1% 전단 살포하는 탈북자들 말만 듣지 말고 한국의 다양한 탈북자들과 접경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상황 잘 모르는 美 정치인 부추겨 여론 호도하려는 여의도 정치인들 

대북전단 청문회가 열리게 된 과정과 실제 청문회를 보면 한국의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워싱턴 정치에 그대로 투영되면서 어떻게 국익을 훼손하고 쓸데 없는 외교 갈등을 만드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북한 문제는 미국도 국익이 걸린 문제이며, 정치적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이슈다. 한반도 주민들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문제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반도 상황을 잘 모르는 미국 정치인들을 부추겨 여론을 호도하려는 태도는 실로 위험천만하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 힘) 대표가 지난 5월 방미한 일도 유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던 시점인데다 팬데믹 상황이었다. 전직 국무총리라는 '명함'으로 워싱턴DC를 찾은 황 전 대표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등 바이든 정부 인사를 만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는 또 탈북자 출신인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 소개로 수잔 솔티 등 북한 인권 관련 활동을 하는 보수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황 전 대표는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미동맹이 거꾸로 가는 상황이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미국에 왔다"며 "미국 조야 인사들을 만났을 때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많으셨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만난 인사들의 면면을 볼 때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불과 며칠 뒤 마찬가지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방미한 국민의힘 백신대표단도 "정치적 접근이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코로나19 백신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이익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라는 점에서 얼마나 효과적인 의원 외교였는지 의문이다. 

'정치적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워싱턴 정가에서 초당적 외교가 갖는 힘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미국도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됐다. 공화당 지지자들 중 아직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겼는데 선거 결과 조작으로 백악관을 빼앗겼다고 믿는 이들이 78%에 이른다(CNN-SSRS 여론조사, 9월3-7일). 오는 18일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인 트럼프 지지자들 집회를 앞두고 '제2의 의회 폭동'이 일어날까 의회 경찰이 초비상에 들어갔다. 의회 경찰은 다시 의사당 주변에 철조망으로 울타리로 세우고 국방부에 주 방위군 지원 요청을 했다고 한다. 지난 1월 6일 있었던 의회 폭동을 기념하기 위한 이 집회는 트럼프 지지자 700명 가량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정권이 들어선 이래로 이런 정치적 갈등 때문에 코로나19 상황도 기대만큼 나아지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당수의 정책 추진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왕이면 같은 시기에 미국을 방문하게 된 한국의 여야가 상생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그보다 미국까지 와서 서로 대립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일정에 국회 산자위 여야 의원(민주당 이학영, 강훈식, 국민의힘 엄태영, 시대전환 조정훈)들이 동행했다. 여 본부장은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 대표와 회담, 미국 상하원 의원 등을 만나는 취임 후 첫 미국 출장에 여야 의원들이 함께할 것을 제안해 받아들여졌다고 14일 특파원 간담회에서 밝혔다. 중국과의 경쟁 구도에서 한미 관계는 외교안보 이슈만이 아니라 경제 영역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은 간담회에서 "정부와 여아가 함께 나오니까 미국 측에서 만날 때 힘이 실리는 것 같고 반응도 좋았다"고 초당적 의원 외교의 성과에 대해 인정했다. 

▲지난 1월 6일 일어난 미 의회 폭동 당시 등장한 태극기. ⓒNBC 화면 갈무리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91701245190853?utm_source=dable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