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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이든을 흔드는 '상왕' 상원의원, 조 멘친

[워싱턴 주간 브리핑] 트럼프의 칭찬 받는 민주당 상원의원, 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주목 받는 미국 국회의원은 조 멘친 민주당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이다. 민주당 소속인 멘친 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에게 비판 받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겐 칭찬 받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혹자는 멘친이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퇴짜를 놓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제2의 미치 매코널'이라고 평가한다. 전임 민주당 정부였던 오바마 행정부 때 공화당 원내대표였던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켄터키)은 사사건건 오바마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멘친은 사사건건 바이든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멘친이 '상왕' 상원의원이 된 세가지 이유 

상원의원 100명 중 한 명인 멘친이 과거 상원 다수당 대표와 마찬가지 힘을 갖게 된 것은 세 가지 조건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첫째, 양원제인 미국 의회의 작동 방식, 둘째, 현재 양당의 상원 점유율, 셋째,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양극화된 정치 지형. 

첫째, 연방국가가 탄생하는 역사성이 반영된 미국 의회 구조가 양원제다. 하원의원은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구 수를 반영해 각 주마다 의석수가 다르다. 반면 상원의원은 50개주에서 인구 수와 무관하게 각 주마다 2명의 의원을 선출한다. 입법부인 미국 의회의 역할은 단원제 국가들과 유사하지만 법안과 예산안이 하원과 상원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결과적으로 상원이 입법 과정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둘째, 현재 상원의 의석수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석으로 동률이다. 여기에 부통령(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상원 의장을 겸직하므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다. 하원도 민주당이 다수당이며, 하원의장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이 맡고 있다. 2020년 선거로 민주당은 상원과 하원, 행정부를 모두 장악했다. 

지난해 선거 결과로 '파란 물결(민주당의 상징색이 파란색이다)'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의원이 바로 조 멘친이다. 멘친은 공화당이 강세인 웨스트버지니아의 유일한 민주당 상원의원이다.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내서 지역 지지기반이 탄탄한 멘친은 2010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당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길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중도인 바이든보다도 훨씬 오른쪽인 멘친은 상원의석 수가 절묘하게 50 대 50이 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자신이 반대하면 바이든 정부가 원하는 법안이 통과될 수 없는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셋째, 멘친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것은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지지 정당으로 갈라진 정치질서 때문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자신의 정치적 노선과 입장에 따라 소속 정당과는 무관하게 교차 투표를 하는 의원들이 있었고, 이들의 선택도 충분히 인정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특히 공화당에서 이런 정치인들은 '배신자', '변절자'로 낙인 찍혀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지난 1월 6일 일어난 의회 무장 폭동과 관련한 트럼프의 두번째 탄핵안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들은 모두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정치 생명을 위협 받고 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인 리즈 체니 하원의원(와이오밍)은 최근 당 지도부에서 축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공화당에서 중도파 의원들의 소신 표결을 이끌어내기 힘들어지자, 멘친의 '한표'는 더 중요해졌다. 

▲조 멘친 상원의원(왼쪽)과 조 바이든 대통령. ⓒAP= 연합뉴스

멘친 "선거 개혁법 반대, 필리버스터 폐지 반대" 

멘친은 지난 6일(현지시간) 자신의 영향력을 유감 없이 보여줬다. 그는 이날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선거 개혁 법안인 "국민을 위한 법"(For the People Act)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금지하는 입법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국민을 위한 법'은 현재 텍사스주, 조지아주 등 공화당이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레드 스테이트'에서 유권자(특히 유색인종)들의 투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연방 차원에서 막기 위한 법안이다. 멘친은 이 법안이 "초당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경기 부양안도 공화당 의원의 지지를 받지 못했는데, 그는 이 법안은 찬성했다. 웨스트버지니아는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이기 때문에 경기 부양안을 반대하면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 때문이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제도인 필리버스터는 상원에서 오히려 법안 통과 자체를 가로막는 비효율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전부터 제기됐었다.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는 60명 이상이 찬성할 경우를 제외하고 진행할 수 있다. 현재 상원 의석 구조에서 공화당은 필리버스터로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있다. 필리버스터가 사실상 개혁 법안 통과를 가로 막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멘친이 이 두 가지 쟁점에 대해 모두 공화당 편에 서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CNN은 7일 "멘친은 지금부터 2022년 중간선거 전까지 주요한 개혁 입법안을 효과적으로 박살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공화당과 더 친한 민주당 의원들"...트럼프 "옳은 일 했다" 

멘친이 필리버스터 폐지에 반대하고 나서자 트럼프는 7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그는 옳은 일을 했고 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칭찬했다. 

앞서 바이든은 지난 1일 '털사 인종 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오클라호마주 털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바이든 정부의 개혁 입법이 왜 이렇게 더디냐는 질문을 받는데 이유는 공화당 친구들과 더 친한 민주당 상원의원이 2명 있기 때문"이라고 곤혹스러움을 토로한 바 있다. 직접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명'은 조 멘친과 애리조나의 크리스티 시네마 의원이다.

문제는 바이든도, 상원의장이나 원내대표도, 멘친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2022년 중간선거 전까지 자신의 정치적 포지션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주도하는 공화당이 시도하는 선거법 개악과 같은 정치적 퇴행에 대항할 방안을 찾기가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졌다는 다소 우울한 전망을 낳는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807183588168#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