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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왜 샌더스를 저지하려 할까?

[2020년 美대선 읽기] 극단의 시대, '중도전략' 여전히 유효한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대중적 인기와 정치적 영향력을 모두 갖고 있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뒤를 이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것이라고 예측되던 시점에,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단을 만들고 젊은 정치인 양성과 같은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자신의 은퇴 후 과제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겼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원치 않게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거의 매일 현실 정치로 호출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에서 유세를 하면서 "내가 당선되기 전 미국의 지도자들은 미국 중산층을 그들의 망상적인 글로벌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기 위한 돼지 저금통으로 썼다"고 오바마 정부를 비판했다.

정작 오바마 전 대통령과 그의 핵심 참모들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일은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특정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밝히는 것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재임 시절 부통령을 지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런 오바마 전 대통령의 태도에 서운함을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중립'은 여전하다.  

"오바마, 샌더스가 앞설 경우 저지하기 위해 목소리 높일 것"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폴리티코>는 26일 "오바마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바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앞설 경우 그를 저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고 (측근들에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26일 쿼니피액 대학이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의원은 13%의 지지율로 4위를 기록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지금보다 샌더스 의원의 지지율이 높던 시점에서 나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다만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공식 입장은 변함이 없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변인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누가 민주당 후보가 되든 선거운동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대학 졸업 후 시카고에서 흑인들을 위한 지역운동가를 첫 직업으로 선택하고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인권 변호사로 일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의 이력 때문에 '진보'로 이미지화 되어 있지만, 재임시 경제, 외교 등 주요 정책은 기대만큼 진보적이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 부통령을 지낸 조 바이든 모두 민주당 내 대표적인 중도성향을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진보성향의 후보를 견제하는 발언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15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민주주의 동맹' 연례 만찬에서 "건강보험, 이민 등의 이슈에서 몇몇 후보는 더욱 급진적인 정책을 내놓으려고 하지만 이는 대중 여론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며 "한계를 초월하고 미래에 과감해지더라도 우리는 역시 현실에 뿌리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범한 미국 시민들이 우리의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유권자들이 어떤 과감한 제안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들으면 곧바로 행동에 나설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특정후보를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선명성을 앞세운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1위, 부티지지 2위...중도 '상승' 진보 '하락'

미 퀴니피액 대학이 지난 21~25일 민주당원과 진보 성향의 중도층 유권자 5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6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4.9% 포인트) 결과, 바이든 전 부통령이 24%로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최근 아이오와주, 뉴햄프셔주 등 초기 경선 지역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고 있는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밴드 시장(16%)이 차지했다. 지난달 발표된 같은 조사에 비해 6%포인트 올랐다. 부티지지 시장은 37세의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며 하버드대, 옥스퍼드대를 나온 엘리트 출신으로 중도 성향을 후보로 꼽힌다. 

3위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으로 14%, 4위는 샌더스 의원(13%), 5위는 최근 경선에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3%)다.

진보성향의 워런 의원, 샌더스 의원 모두 지난 조사에 비해 지지율이 하락했다. 특히 워런 의원은 지난달 조사에 비해 지지율이 반토막이 나면서 1위에서 3위로 추락했다. 

 

바이든, 부티지지, 워런, 해리스 등 주요 후보에 대한 오바마의 평가는...

오바마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샌더스 의원 뿐 아니라 다른 주요 후보들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하고 있는 편이라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가장 가까운 인사라고 할 수 있는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해서는 유권자들과의 '유대감'이 부족하다는 점을 약점으로 본다. 그러나 백인 노동자 계층, 흑인 등 주요 유권자 그룹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취약하지만 여전히 지지율 1위 후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의 '회복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다만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6년 경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바이든 전 부통령의 대선 경선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최근 들어 지지율이 급등하고 있는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밴드 시장에 대해 "그의 (당선) 전망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갖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여성이자 유색인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샌프란시스코)에 대해서는 "아프리카 아메리칸들에 대한 호소에 의구심을 표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에 대해서도 "오바마와 워런의 관계는 복잡하기로 유명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중도전략은 여전히 '최선'일까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처럼 샌더스와 워런 등 진보성향의 후보들을 견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이들의 본선 경쟁력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 때문이다. 특히 샌더스, 워런 후보가 주장하고 있는 건강보험 관련 공약(메디 포 올)은 중산층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고, 실제 상당수 유권자들이 비용 부담 증가를 이유로 회의적인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워런 후보는 '초부유세'를 통해 늘어난 건강보험 재정을 채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성에 대한 비판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샌더스, 워런 후보는 정치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상당수 유권자를 흡수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지기 때문에 본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다수의 정치 분석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2016년 대선 과정을 복기할 때 과연 '중도 전략'이 여전히 '최선'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샌더스 의원이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예정된' 패배를 당하자, 샌더스 의원을 열렬히 지지했던 많은 유권자들이 클린턴 후보에 흡수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샌더스 후보와 클린턴 후보의 정치적, 정책적 노선 차이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차이만큼이나 컸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은 2016년 당시 샌더스 의원 지지자 그룹 중에 현실 정치에 참여해 의원이 된 대표적인 경우다. 2018년 선거에서 의회에 진출한 민주당 초선 의원들 중 상당수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유권자들의 요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현실 정치에도 느리게나마 그 변화가 수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본선 상대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점도 '중도'라는 안전한 전략이 가장 효과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극단적인 언설로 끊임없이 유권자들을 자극하는 것에 매우 능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중도성향인데다 국정 경험까지 풍부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패배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샌더스 견제 발언을 보도한 <폴리티코> 기사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민주당 설립자들은 오바마가 트럼프도 저지하고 버니도 멀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의 두뇌 정치는 여전히 극단의 시대에 유권자들을 자극할 수 있을까?"

 

ⓒ폴리티코 화면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