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신상 털린 페미니스트, 되레 명예훼손으로 벌금...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판결...악플 등 괴롭힘에 면죄부"

 

"이런 애들이 꼭 밖에선 성욕 해소하려 창X촌 찾더라."
"차라리 정육점 섬기는 돼지보다 신념 있는 찌질이가 낫지 어후 진짜 극악무도한 노예근성은 살다살다 처음 본다."
"애는 삶의 목적이 여자들 꽁무니나 졸졸 쫓아다니면서 따라하는 거 밖에 없는 애야."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활동을 온,오프라인에서 해온 남성 페미니스트 한모씨는 페미니즘에 반감을 품고 있는 B씨에게 오랫동안 '사이버불링'(사이버상 괴롭힘)을 당했다. B씨는 한씨의 블로그 글에 위와 같은 내용의 악성 댓글을 여러 차례 달았다. 한씨는 처음에는 B씨의 악성 댓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무시했다. 

그러던 중 한씨는 모 대학 페미니즘 소모임 회원이라며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받게 됐고, 이에 응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러 개의 아이디와 이메일을 돌려쓰는 B씨가 한씨의 신상정보를 캐내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일이었다.

이후 B씨는 한씨가 알려주지도 않은 한씨의 거주지를 언급하며 근방에서 만나자는 쪽지와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한씨는 본인 뿐 아니라 함께 거주하는 가족들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신상정보가 털린 후 한씨는 경찰에 불안감 조성 행위로 B씨를 신고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9월 B씨에 대해 '혐의 없음'(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해당 사건은 서울 동작경찰서가 검찰 지휘를 받아 수사해왔다.

검찰은 B씨가 한씨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렸지만 욕설과 협박으로 볼 만한 단어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으로 가장해 전화를 달라고 하거나 주거지 부근에서 보자고 하는 내용은 욕설과 협박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에 한씨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유발하는 문건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씨는 검찰 수사가 끝난 뒤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게 됐다. 검찰 수사가 '무혐의'로 결론 내려진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B씨가 자신 만이 아니라 다른 여성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접근해서 악성 댓글을 남기고 여러 대학의 페미니즘 소모임 회원을 사칭해 페미니스트들의 신상을 캐는 등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후각강간 하지 맙시다. 생리를 쌌으면 밖에 나오지 말라고.'
'ㅇㅇ(여성 페미니스트)얼굴 그랜버드에 밟혀 작살난 듯.'
'ㅇㅇ언냐 박아줘.'
'여자라서 치마에 똥쌌다.(생리에 대한 비하표현)'
'난 한국 계집들을 제일로 혐오한다. 속 좁고, 이기적이고 지 편안함만 추구하는 유사인류 한보충(한국여자보지벌레)은 파리 모기 이하로 취급한다.'

B씨는 이와 같은 내용의 악성 댓글을 다른 페미니스트 글에 달았다. 

한씨가 B씨의 행동에 대해 폭로하는 글을 올리자, B씨는 역으로 한씨를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신고를 하고 나섰다. B씨와 경찰은 한씨의 혐의를 3가지로 보았다. 

첫째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B씨가 쓴 댓글, 메일 등의 내용을 모두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적시해 B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형법은 허위 사실 뿐 아니라 사실을 적시했을 경우에도 명예훼손을 인정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허위 사실을 적시했을 경우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가중 처벌 된다. 

두번째는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한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B씨가 무고죄로 자신을 역고소하려 했을 가능성에 대해 주장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한씨가 B씨를 "안티페미니스트계의 드루킹"으로 비유한 것이 모욕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결국 검찰의 수사 결과 한씨에게 위 세 가지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하여 벌금 70만 원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처럼 검찰에서 B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한씨에 대한 혐의를 인정함으로써 법원에 약식기소를 하자, B씨는 이를 근거로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500만 원의 위자료까지 청구하고 나섰다. 현재 한씨는 법원에서 약식명령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재판이 진행중인 상태다.

한씨는 <프레시안>과 전화 통화에서 "정작 장기간 여러 모욕적인 댓글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거짓 글에 속아 신상이 털린 사람은 저인데, B씨는 무죄고 공익적인 목적 하에 그 사실을 공론화한 저는 유죄라는 사실이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 고통을 떠나 이 일이 이렇게 마무리되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B씨는 이전에 하던 행동을 더욱 대담하게 여러 명에게 반복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다른 피해자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씨는 또 경찰 수사 과정 등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 같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B씨는 이전에 자신이 했던 행위는 빼고, 제가 블로그에 자신을 비난한 내용만 나열해 놓으니까 유죄가 나왔다"며 "그런데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제가 자기 방어를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나 검찰이 B씨와 내가 페미니즘이 아니라 다른 정치적 사상이나 견해를 갖고 다툼이 일어서 이 정도 수위의 댓글이 달리고 개인신상이 털리는 일들이 있었더라도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여겼을지 솔직히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