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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여의 귀환' 10년, 한국 가부장제를 흔들다"

2005년 정부는 '건전한 입양 문화 정착과 국내 입양의 활성화'를 위해 매년 5월 11일을 '입양의 날'로 정했다. 이런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미혼모(부)와 그 자녀의 문제를 비가시화 시킨다며 미혼모와 입양인들은 2011년부터 매년 5월 11일을 '싱글맘의 날'이라 부르며 별도의 기념 행사를 가졌다. 이런 당사자 운동의 성과로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2018년 5월 10일 '한부모가족의 날'이 제정됐다. 

"싱글맘의 날 등장의 의의를 한마디로 ‘잔여의 귀환’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해외입양인들과 친생모(가족)들과 양육미혼모(부)들 그들은 한 때 한국사회의 ‘잔여’로 간주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한국사회로부터 이주당하는 일로 가정과 사회와 문화와 모국을 상실해야 했고, 친생모(부)들은 ‘사회적 죽음’의 경로 안에서 한국 사회의 ‘내부 난민’이 되었으며, 양육미혼모들은 편견과 차별의 억압 아래 놓인 ‘주변인’이 되어가야 했습니다....한국이 그들을 잔여로 만들어 내는 사회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잔여의 귀환’이란 잔여를 생산하는 한국 사회의 사회적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고, 인종주의와 가부장제로 구조화된 의식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이런 사회적 억압 아래 놓는 이들도 놓이는 이들도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입양인 지원단체인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제9회 싱글맘의 날 국제컨퍼런스 발제문에서 '싱글맘의 날'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 목사는 입양이 주로 미혼모(부)와 그 자녀인 원가족의 이별에 기초한 일(2018년에도 입양 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부)의 자녀다)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정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된 해외입양은 아동의 이주를 통해 원가족의 문제를 해체시키려 했다면서 지난 60여년간 20만명의 아동을 해외로 내보낸 한국 사회안에는 "이별과 상실의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슬픔'의 존재를 일깨워준 것은 성인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해외입양인들과 미혼모(부)로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양육하는 것을 선택한 양육 미혼모들이었다. 입양인 당사자 단체인 국외입양인연대(Adoptee Solidarity Korea/ ASK)가 2004년 설립되고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이 2007년 만들어졌다. 또 2007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2009년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설립됐다. 두 단체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한국 아이를 입양한 입양부모였던 미국의 치과의사 리처드 보아스 박사의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들은 자신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삶의 자리를 빼앗았던, 억압하고 송출했던, 내부 난민으로 숨죽이고 살도록 하였던 강제했던 가부장제적 관념과 권력 체계에 균열을 내고 한국 사회를 재구성하겠다는 결의를 '싱글맘의 날' 운동에 담아냈다"고 주장했다. 

미혼무(부)와 입양인 당사자 운동의 성과로 김 목사는 (1) 입양특례법 전부개정(2011년), (2)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기본생활시설(미혼모의집)의 폐소 입법(2011/2014년), (3) 양육비 이행관리원의 법제화(2014년), (4) 인구주택조사 항목 변경을 통한 미혼모(부)에 대한 정책수립의 기초 마련, (5) 가족관계증명서 발급방식 변경(2016년), (6) '한부모가족의 날' 제정(2018년), (7)미혼모(부) 국가지원금 상향 등을 꼽았다.  

특히 올해부터 기념하게 될 '한부모가족'의 날에 대해 "'싱글맘의 날' 운동을 벌여온 일이 공공적 영역에서 제도화된 일"이라며 "2018년 '한부모가족의 날' 제정 기념행사의 인사말에서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입양의 날'에 하루 앞서서 '한부모가족의 날'로 기념하기로 한 것에는 우리 사회가 입양보다는 아동을 원가정에서 먼저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뜻도 있지 않겠느냐 라고 한 바가 있었는데, '싱글맘의 날'의 핵심 메시지가 제도적 층위로 수렴되었다고 볼 수 있는 한 예"라고 강조했다. 또 해외입양인, 양육미혼모와 그들의 자녀, 친생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 등도 주요한 성과로 꼽았다.  

김 목사는 '싱글맘의 날' 운동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미혼모 운동이 도와달라는 운동, 미혼모들에 대한 지원금을 올려달라는 운동, 국가에 기대고 도움을 요청하는 운동"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구성원들을 향해서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느냐를 묻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혼혈아동이라고, 혼혈아동의 엄마였다고, 극빈 가정의 여성이었다고, 극빈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엄마나 혹은 아빠가 결혼하지 않은 분들이었다고, 혹은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아이를 낳았다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기회도 평등하지 않고 과정도 공정하지 않으며 결과도 정의로운 사회가 아닙니다. 해외입양인들과 해외입양인원가족들과 양육미혼모와 그 자녀들은 이런 차별과 배제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토로했습니다. 개인의 사적 삶을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는 일이란 개인 자신에게는 수치와 모멸을 부를 수 있는 일이지만, 이들은 용기를 내어 말을 해왔습니다. '잔여의 귀환'은 이제 한국 사회의 재구성을 위한 전망, 나라다운 나라를 구성하는 큰 힘이자 축복이 되고 있습니다." 

미혼모 당사자 운동을 벌여온 이들은 2019년을 끝으로 '싱글맘의 날' 기념 행사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당사자 운동의 성과로 정부가 '한부모가족의 날'을 제정하는 응답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으로 해외입양인 문제에 보다 집중해 운동을 해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