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플

[19세, 투표로 세상과 만나다] "평면에 갇힌 진보, 3D로 진화 좀 하라" (2012.1.1)

시위자(The Protester).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뽑은 2011년의 인물이었다. 중동의 민주화 바람에서부터 미국 전역을 휩쓴 '점령하라' 시위대까지. 기득권에 대한 분노로 거리에 나온 시위자들은 변화하고 있는 세계사적 흐름의 상징이다.

시위라는 '거리의 정치'를 통해 마구잡이로 불거져 나온 민중들의 요구와 희망은 현실 정치 질서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2011년과 연장선상에서 볼 때 2012년의 선거를 더 주목해야 한다. 단지 4월 11일에 19대 국회의원 선거가, 12월 19일에 18대 대통령 선거가 연이어 치러진다는 물리적 조건 때문에 2012년을 '선거의 해'라고 보는 건 부족하다. 올해는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 등 주변 국가들도 선거 등을 통한 권력교체가 예정돼 있다.

2008년 촛불시위를 시작으로 가시화된 피플파워(people power)가 2012년 '선거의 해'에 어떤 식으로 발현될까? 겉으로 드러난 것은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이지만, 야권까지 포함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고갱이인, '분노한 민심'은 선거라는 정형화된 선택지를 만나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빠르게 변화하는 정치와, 이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민심 사이에서 누구도 장담할 만한 관측을 내놓기는 어렵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돌풍'을 들여다보면 더 그렇다. 이념이 아닌 '상식'을 얘기하는 '과학자이자 경영인' 출신인 안철수의 등장에 많은 유권자들이 열광했다. 안철수의 정치 진출 여부와 무관하게 '안철수 돌풍'이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이유는 분노한 민심의 향배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선거의 해'의 첫날, <프레시안>이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만 19세 새내기 유권자를 만난 것도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1%'에 저항하는 '99%', 그중에도 나이가 어려 가진 게 없어 밑바닥인 이들은 한국 사회와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 사회와 정치가 어떻게 바뀌길 바라고 있을까.

▲ 2012년 첫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윤재은(왼쪽), 지웅배(오른쪽) 씨. ⓒ프레시안(최형락)

"공교육은 친구랑 추억 쌓는 기능 밖에 못해요"

지웅배(남・19) 씨는 과학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주변에서 "왜 별쟁이나 하고 있느냐"는 핀잔을 듣지만 공부를 계속해 교수가 되는 게 꿈이다. 과학고에 가면 끝인 줄 알았는데, 과학고이기 때문에 또 사교육에 시달려야 했던 그는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한다"는 데 문제의식이 많다."우리끼리 농담하는데요, 고딩들이 노스페이스를 입는 이유가 '교육이 산으로 가기 때문'이라고요. 툭 까놓고 공교육은 국민의 의무라서 받는 거고, 사교육은 대학 가려고 받는 거예요. 공교육은 친구랑 추억 쌓는 기능 밖에 못하고 있어요."

"교육의 종점, 최종 목표가 대학이에요. 커서 뭐가 돼야지 보다 좋은 대학 가야지가 우선순위잖아요. 그러다보니 대학에 온 학생들도 괴리에 빠져요. 나 이제 뭐하지? 꿈을 끝까지 간직한 사람이 신기한 사람이 돼버려요."

이들이 한국사회의 모순을 처음 직면하는 공간은 학교다. 한국의 공교육이 얼마나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대입 원서 한 장이 새 건물 벽돌 한 장이래요"

이제 막 사회로 나서려는 이들은 가정과 학교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먹고 사는 일'의 비루함을 처음 절감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윤재은(여・18) 씨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정시 상담을 마쳤다는 그는 광고를 만드는 게 꿈이다. 윤 씨는 "광고 일을 하더라도 전문대에서 배우면 되는데, 뭘 하고 싶든지 간에 일단 4년제 대학에 가라고 하는"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다.

수능이 끝나고 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는 새삼 돈 벌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절감했다고 한다. "주유소 사장님이 자꾸 면접 시간을 마음대로 바꾸는데, 제가 한번 시간이 안 된다니까 '그럼 나오지 말라'고 하시네요. 법정 최저임금인 4320원도 안 주는 데가 많아요. 주유소 전에도 카페, 피자집에 면접 보러 갔는데, 수습기간이라고 정해놓은 기간에는 시급이 4000~4300원 정도였어요. 청소년이라고 최저임금을 안 주니까 기분 나쁘죠."

두 사람 모두 자신과 가족의 계층적 위치를 "애매한 중산층"이라고 표현했다. 상대적으로 하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흔히 생각하는 중산층의 정의, 즉 먹고 사는 것에 대한 큰 걱정 없을 정도의 형편이 못 된다고 밝혔다. 그러다보니 '반값 등록금'에 대한 요구는 당연히 따라 나왔다.

ⓒ프레시안(최형락)

윤 씨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아야 할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다.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으려니 아르바이트할 시간이 없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 장학금을 못받으니 등록금을 대출받는 악순환에 빠져요. 당장 학자금 대출 이자라도 낮춰줬으면 좋겠어요."

다만 지 씨는 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반값 등록금 시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반값등록금'의 실현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대학이 돼야 한다는 것. 윤 씨도 이에 동의했다. "대학에서 충분히 반값 등록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수시 지원했잖아요. 원서 한 장 값이 평균 7만 원이에요. 한 사람당 적으면 서너 곳 많으면 열 곳까지 지원해요. 한 사람당 평균 5장이면 35만 원이에요. 우리 학교 3학년이 600명인데, 거의 한 고등학교당 원서비만 2억 원인데요, 전국적으로 이걸 다 합치면 얼마나 되겠어요?" 지 씨도 맞장구를 친다. "새 학기마다 건물이 하나씩 생겨요. 원서 한 장에 건물 벽돌 한 장씩 대는 셈이에요."

"<나꼼수>, 윗분들은 걱정하지만 막상 우리는…"

본격적인 정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규정하는 데 조심스러워했다. 그럼에도 굳이 규정하자면 '진보'에 가깝다고 답했다.
윤 씨는 보수적인 어머니와 진보적인 큰오빠 밑에서 자랐다. 지난 여름부터 스마트폰을 샀고, 트위터를 통해 처음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원안대로 통과시키라며 청소년들이 서울시의회를 점거했다는 소식이 트위터에서 전해지자 그는 처음으로 농성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상대방을 무조건 보수 꼴통으로 몰아가는" 배타적인 트위터 분위기에는 불편함을 느낀다. 또 시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보수신문도 읽는다. "엄마가 집에서 <조선일보>를 보셨는데, 오빠가 반대하니까 <조선일보>를 끊고 대신 <중앙일보>를 보시더라구요."

"대학에 들어가면 아마 극좌파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사회주의를 좋아하거든요. 제 사상이 어떻다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아마 공부를 더 하다보면 좌파 쪽으로 점점 더 가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한쪽은 '보수 꼴통', 다른 한쪽은 '좌빨'이라고 서로를 몰아세우는데, 좌파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건 아니잖아요. 보수도 합리적이면 되는 거고, 좌파도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되고."


지 씨는 자신도 고등학교 때는 '극좌'였다가 대학에 들어와서는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아버지가 87년 '넥타이 부대'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한나라당이 나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저는 솔직히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을 굉장히 싫어해요. 그런데 저에 대해 굳이 표현하자면 '진보를 싫어하는 진보'? 무슨 말이냐면, 진보는 진보인데 평면에 갇힌 진보를 싫어하는 진보예요. 이과생이라 그런가? 현재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평면에서 좌우 양쪽 끝에서 계속 서로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앞으로 못 나가죠. 저는 평면이 아니라 3D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3D 진보'. 앞으로도 나가고 위로도 진보해야죠."

ⓒ프레시안(최형락)

지 씨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 포털사이트인 네이트를 통해 인터넷 신문을 읽고, <나는 꼼수다>도 즐겨 듣는다. 그렇다고 보수신문이나 TV 뉴스를 보지 않는 건 아니다. "조현오 경찰청장 성대모사가 재밌더라구요. 주변 친구들도 <나꼼수>를 적지 않게 들어요." 그러나 그는 <나꼼수>의 위력이 "윗분들이 걱정하시는 만큼"은 아니라고 했다.

"맛있게 씹어주니까 즐거워하는 거지 <나꼼수>를 진지하게 듣진 않아요. 개그콘서트처럼 듣죠. 우리가 개그맨 최효종을 보고 선동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풍자로 듣는 거지. 그런데 <나꼼수>가 '그분들'의 비리를 캐고 알리는 게 목적이다 보니 <나꼼수>를 통해서 '그분들'을 싫어하는 이유가 더 늘어나긴 했죠."

윤 씨는 <나꼼수>에 대해 조금 달리 평가했다. "제가 트위터에서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나꼼수>를 싫어하는 사람 반, 좋아하는 사람 반이라 서로 언급을 안 해요. 주로 폭력적인 말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꼼수>를 안 듣더라고요."

"투표하려고 5년을 기다렸어요"

두 사람 모두 내년 총선과 대선에 투표할 예정이다. 투표를 꼭 하려는 이유에 대해 윤 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결심했죠. 다음엔 내가 뽑으리라고요"라고 말했다. 지 씨도 "5년이 이렇게 길 수 없어요" 거들었다. 공통으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이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한 나라의 원수면 최소한 깨끗해야 할 것 아닌가요? 그런데 너무 지저분하잖아요. 사리사욕이 너무 심해요. 임기 끝나고 정권 바뀌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감옥에서 살아야할 것 같아요. 경제 대통령이라고 나섰지만 경제가 나빠진 것은 이해할 수 있어요. 대통령 잘못도 있지만 세계경제 위기로 어쩔 수 없는 상태가 합쳐진 것이라고 봐요. 개인적으로 도덕적인 문제가 없었다면 그래도 괜찮은 대통령이지 않을까 생각해요."(지웅배)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명박산성'을 쌓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모습을 보고, '저 분은 우리 생각은 절대로 안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머리에 딱 새겨졌어요. 그래서 뭘 하든 좋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에요.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요. 그리고 가끔 가다 하는 망언이 거슬려요. 특히 일본과 독도에 대한 망언이 많았어요."(윤재은)


대통령의 '실언'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문제가 됐던 발언을 꼽았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수해민에게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등이 꼽혔다.

지 씨는 서민들이 서민을 위하지 않는 대통령을 뽑는 반복되는 '모순적 투표 행위'에 대해 나름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한 정치인들이 우리를 대변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불우한 사람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은 젊었을 때는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지 모르지만,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나선 '난 되는데 왜 징징대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겠죠."

이 대통령 특유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화법은 이런 인식을 잘 보여준다는 것.

"문제는 모두가 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자수성가한 사람은 그걸 인정하지 못하죠."(윤재은)
"박근혜 업적은 태어난 것밖에 없잖아요"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대통령을 원하고 있을까? 현재 거론되는 대권 주자 중 누구를 좋아할까? 여당인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후하지 않았다. 박 위원장도 이들에게 괴리감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로는 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서민 정책과 젊은이들과의 소통 부재를 꼽았다.

"막말해도 되나요? 그분은 업적은 아버지를 잘 만나 태어난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대권에 나서고 싶으면 정치를 말만 갖고 하는 게 아니라 수긍할 만한 업적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만약에 대선에 나온다면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꼴이 날 것 같아요. 한나라당에서는 좋은 자리에 앉혀놓긴 했지만 우리 세대에게 와 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런 분이 서민 정책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예요."(지웅배)

ⓒ프레시안(최형락)

"그냥 동떨어진 사람 같아요. '공주님' 혹은 '이모' 이미지? 선거 때마다 서민 코스프레하는 것도 어색하구요."(윤재은)

안철수와 이명박의 차이...흥부와 놀부?

그렇다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엇갈렸다. 윤 씨는 야권에 호의적이었고, 투표할 때 당적을 중요하게 본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만 보고 찍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후보가 당에 소속되면 당론을 따르고 당의 색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씨는 또 '거리의 정치'가 '제도권 정치'로 얼마만큼 반영시킬 수 있는 지도 중요한 지지 기준이었다. 그는 시위에 참여했던 경험을 풀어놓았다. "얼마 전에 학생인권조례를 원안대로 통과시키라고 서울시의회를 점거하고 농성했어요. 거기서 엘리베이터에 타는 한 시의원에게 항의하니까 그 시의원이 '(너희가 요구하는 사항을) 다 들어줄 줄 아느냐'고 말했어요. 화가 났죠. 그래서 저는 우리의 말을 들어줄 정치인을 찾아요."

이런 이유로 윤 씨는 선거 때만 반짝 "말 잘 듣겠다"는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당선 이후에도 트위터 등을 통해 유권자들과 소통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에 호감을 표시했다.

반면 지 씨는 당보다는 후보를 중요시했다. 그는 야당을 포함한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이 컸다. 특히 야당과 여당이 모두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게 불만이다. "한나라당은 지지하기 싫어요. 짜증나고 나쁜 놈들이에요. 그런데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을 보면 너무 이상적이에요. 한나라당을 지지하자니 얘네 배 불리는 것 같고, 야당은 너무 허황된 얘기만 하니 딜레마죠. 박원순 서울시장을 찍은 제 주변 사람들 중엔 현재 보이는 모습에 대해 불만이 있는 친구들도 있어요. 노숙인을 위해 온돌을 깔았잖아요. 한나라당이 상위 1%만 챙겨서 하위 99% 챙기라고 뽑아줬더니 하위 1%만 챙기고 있다고요. 그래서 (여당 성향과 야당 성향이) 합쳐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안철수에게 기대하죠."

"내년 대선에서 안철수가 나오면 그를 찍을 거예요. 다만 안철수가 야권후보로 나오면 실망하겠죠?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윤 씨는 "어린 사람들의 말도 잘 들어줄 것 같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호감을 표시하면서도 그를 반신반의했다. "안철수는 아직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선거에 나간다면 확실한 발언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회사 경영도 일종의 정치이긴 하지만 현실 정치는 그것만으로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안철수 원장도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자수성가형 CEO 출신이다. 이 대통령은 재벌기업 계열사 CEO, 안 원장은 벤처기업 CEO라는 차이가 있지만. 지 씨는 두 사람의 차이를 '흥부와 놀부'에 비유했다. "안철수가 대학에서 연구비 횡령해서 돈을 벌지는 않았잖아요. 오히려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돌렸죠. 반면 대부분의 기득권층은 검은 돈을 굴려 돈을 벌었죠. 거기서 신뢰의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대의 민주주의의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것 같다"

어쨌든 두 사람 모두 안철수에게 호감을 가지는 이유를 "소통 가능성"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동안 유권자들과 정치인의 괴리가 컸다는 것이다. '젊은 서민'과 '어른 정치인'의 거리는 더욱 그랬다. 불통에서 오는 좌절은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지 씨는 20대 투표율이 낮은 현실에 대해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려놨어도,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다시 여당 지지율이 팽팽히 오를 것"이라면서 "뽑아 봤자 바뀌는 것도 없는데 뭐 하러 귀찮게 뽑느냐고들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직접 뽑는 것 말고는 참정할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면서 "이제는 선거를 통해서만 정치에 개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대의 민주주의의 유통기한이 다 된 것 같다"고 강조했다.

"내가 뽑든 안 뽑든 어차피 세상은 똑같이 갈 것이고, 투표 말고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으니 대의 민주주의의 유통기한이 다 된 거죠.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체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윤 씨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낀다. "저는 중요한 정치 사안은 국민투표에 부쳤으면 좋겠어요." 그는 또 교육감 선거에 있어선 학생들에게까지 투표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에게 교육감이라도 투표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교육 현장의 당사자잖아요. 어른들이 '너희는 어려서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를 책임져줄 우리 교육감을 뽑는 거 아닌가요?"

"퍼주는데 왜 불만이냐고요? 세심한 감성복지를!"

정치 참여를 통해 이들이 이루고자 하는 구체적인 정책 요구는 실생활에 맞닿은 복지 문제와 교육 문제로 압축됐다.

ⓒ프레시안(최형락)

지 씨는 "기업 정책을 펼치면 먼 미래에는 우리 가족에게 그 효과가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기왕이면 국민연금이나 등록금 인하 같이 서민에게 바로 와 닿는 복지 정책이 확실히 보장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는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이슈에 대해 이들은 오히려 간단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보편적 복지, 차별적 복지는 그때 그때 다르게 펼쳤으면 좋겠어요. 육아나 의료는 보편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잖아요. 돈이 없어서 치료 못 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죠. 반면에 무상급식은 가난한 애들한테만 했으면 좋겠어요. 무상급식을 밀고 나간 이유가 애들이 상처 받는다는 것인데, 비밀보장이 확실히 되면 상처 받을 일이 크게 없을 것 같아요. 비밀보장이 제대로 안되는 이유는 이 부분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학 등록금은 부자들한테도 비싸니 깎아야 할 것 같아요."(윤재은)

"하위 1%뿐만이 아니라 우리 같은 98%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치인들은 '퍼주는 데 왜 불만이야'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세세한 감성복지를 챙겨줘야 해요. 금액, 수치로만 복지 실적을 따지니까 매년 복지예산은 나가는데 피부에 와 닿지 않아요."(지웅배)


마지막으로 정치권과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윤 씨는 "젊은 유권자가 믿고 소통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정치와 내가 동떨어진 느낌이 많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지 씨도 거들었다. "욕 먹는 정치인은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흔히 정치인이라고 하면 욕하기 쉬운 상대, 아무 것도 안 한 사람으로 생각돼요. 우리에게 직접 다가오는 정책을 펼쳤으면 하죠."

"저는 부천에 살아서 원혜영 전 부천시장을 좋아하는데, 버스 안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전광판을 만들어주고 도서관도 많이 지어주는 등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많이 했어요. 또 시청에서 매주 시민에게 시정에 관한 안내 이메일을 보내고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하기도 했죠."(지웅배)

"아, 한 가지 더. 다음 대선 때 교육정책에서 인권교육정책을 확실히 공약해주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인권 감수성 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내세울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청소년들이 놀 곳이 너무 없거든요. 청소년을 위한 공간도, 시간도, 프로그램도 전무해요. 학교에서 배드민턴반을 들어도 배드민턴은 치지 않고 자습하고, 역사연구반에서도 역사는 연구하지 않고 자습만 해요. 학생들의 취미 활동도 보장해주는 교육 정책도 필요한 거 같네요." (윤재은)

 

(이 기사는 김윤나영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