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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윤석열 정부의 '공정' MB 때보다 훨씬 위험하다"

[2023년, 묻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대입수학능력 시험 결과 상위권 159명의 성적이 시스템 오류로 10점씩 낮게 나왔다면 교육부 장관이 자진해서 사퇴하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석달이 되어가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주 국회 국정조사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도 종결됐지만, 이 장관은 건재하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프레시안과 신년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참사와 관련한 '사회적 감각'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수능 점수'와 비교하며 말했다. 

그는 "진상규명은 어떤 사건의 프로파일을 완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문제가 정말로 중요하며 책임지지 못하면 자리가 위태롭다는 감각을 키우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이를 독려하는 정부 조직과 기조가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이상민 장관 퇴진 운동’은 참사의 정쟁화가 아니라 정치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며 올해 인권의 차원에서 시민들이 요구해야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이태원 참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는 유가족을 끝까지 '개인화' 시키려 했고, 이런 태도는 여성가족부 폐지, 장애인 이동권, 화물연대 파업 등 다른 사회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일관되게 발견된다.

장애인, 여성, 노동자 등이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평등을 주장하고 나서면 윤석열 정부는 "평등성과 보편성이 아닌 편 가르기를 하는 정치"를 통해 "차별의 문제를 피해를 경쟁하는 문제로 만들고 있다"고 미류 활동가는 지적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지적하면 이를 당장 시민의 불편을 대립하는 문제로 제기하면서 시민과 장애인이 대립하는 구도로 치환시킨다. 

"윤석열 정부는 집단적 권리의 실현을 통해서 모두의 권리를 증진하는 것은 철저하게 배제한 채 개인을 구제하는 방식을 '개혁'이라고 말한다. (…) 많은 이들이 윤석열 정부가 공정을 이야기하니까 이명박 정부를 떠올리는데, 윤석열 식의 공정은 MB 정부 때보다 더 위험하다. MB는 공정을 가이드 혹은 지향으로 이야기했다면, 지금 윤 대통령은 개인의 권리 자격을 묻는 잣대로 공정을 들이대고 있다." 

다음은 미류 활동가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그는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산하 진상규명 시민참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프레시안(이명선)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프레시안 : 이태원 참사 발생 석 달이 되어가고 있지만, 희생자 유가족들은 "아직도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며 울부짖고 있다. 

미류 : 두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국가의 책임 부정이다. 참사 직후부터 "주최 측 없는 행사"(박희영 용산구청장),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 아니었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같은 말들이 나왔다. 특수본은 "책임 소재를 규명"하겠다며 수사를 했다. 국가가 "책임" 자체를 지지 않겠다고 하는데 소재를 밝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결국 꼬리 자르기였고, 유가족들에게 진실도 정의도 되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재난참사 진상규명이 누군가 고통과 죽음을 겪은 과정을 살피는 일이라는 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 정부기관 업무 평가와 다르다. 재난참사의 진상규명이라는 것은 각각의 고유한 빛깔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삶과 존엄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되짚는 과정이어야 한다. '도대체 그날 어떤 상황이었기에 꼼짝할 수 없게 됐고, 꼼짝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또 어떤 우연들이 겹쳐서 목숨을 잃게 되었는가?' 혹은 '살아남았지만, 이런저런 힘든 상황 끝에 겨우 살아남은 건가'처럼 구체적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진상규명이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각각의 고유한 빛깔을 가진 159명과 함께 살면서 지키고 싶었던 것,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시 지켜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와야 비로소 '이태원 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가 완성된다고 본다. 

"'정쟁화'는 옳지 않지만 '정치화'는 중요하다" 

프레시안 : 지금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열리고 있는데, 정치권으로 넘어오니 역시나 정쟁으로 치닫고 있다. 

미류 :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도 정쟁의 대상이 됐다. 재난참사를 이렇게 정쟁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치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난참사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가 침해된, 혹은 그것을 보장하는 데 국가가 실패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재난참사에 대한 국정조사는 '우리 사회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밝히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단편적인 사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참사 당일 윤석열 대통령보다도 19분이나 늦게(10월 29일 오후 11시 20분) 보고를 받고 8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그런데도 "제가 그 사이에 놀고 있었겠나", "중대본 가동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는 아니다" 같은 말을 했다. 재난안전 주무부처로, 이태원 참사에서는 재난관리 주관기관의 장으로, '10분이라도 더 일찍 보고 받았다면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중대본을 조속히 꾸렸다면 기관 간 협조가 조금이라도 원활하지 않았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도 부족할 판에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럴 경우, 행안부 하위 기관도 '더 빨리 보고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했어야 했지?'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왜? 상급자가 그런 말을 안 하니까. '괜히 일찍 보고하려고 애쓰지 말자'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 이상민 장관은 "현재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를 두고 자신은 최선을 다한 듯 말하는 장관에게 어떻게 우리의 생명을 맡기나. 이런 사람이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 그만둬야 한다. 

▲ 이태원 참사 현장. 특수본은 지난 13일 참사의 원인은 '군중 유체화'라고 밝혔다. 박준영 금오공대 기계설계공학과 교수는 "국과수 밀도 추정 감정서를 토대로 사고 골목길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오후 9시부터 10시 30분까지 군집 밀도가 제곱미터당(㎡) 6∼10명 사이가 되면서, 피해자 1인 평균 약 224㎏∼560㎏ 무게 정도의 힘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압력에 시달리던 희생자들은 10분 이상 저산소증 등을 겪다가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다. ⓒ연합뉴스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프레시안 : 참사를 인권의 관점으로 보고 진상규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류 :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진상규명이라는 것이 어떤 사건의 프로파일을 완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의 권리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 함께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축제를 한다고 사람이 모일 때 경찰들이 가이드라인을 펼치고 질서유지하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정부는 진상규명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11월 행안부는 '주최 측 없는 행사'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책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112 반복 신고 감지시스템 구축', '112기본법 제정', '혼잡경비 업무 담당 민간 경비원 육성' 같은 대책을 발표했다. 이태원 참사가 주최 측 없어서 발생했나? 혼잡경비 업무를 담당할 경찰공무원이 부족해서 발생했나? 112신고가 반복되는 걸 감지할 기술이 없는 게 문제였나? 참사의 원인 규명과 무관한 대책들만 무성하고, 정작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가 어떻게 더 지켜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을 개선하고 시나리오별 대응 훈련을 반복하는 기술적·기계적인 것만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은 위험 상황을 인지하는 역할을 맡은 관련자들이 '이 문제는 정말 중요하다. 책임지지 못하면 정말 위태롭다'와 같은 감각을 키우고 그런 감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것을 독려하는 정부 조직의 기조와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사람 목숨'보다 '수능 점수'를 더 중시하는 사회 

프레시안 : 정쟁화는 옳지 않지만 정치화는 중요하다고 했다. 정치화한다는 것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인데, 책임을 묻는 순간 다시 정쟁이 된다. 참 어려운 문제다. 

미류 : 어려운 문제지만, 사회적 감각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대입수학능력 시험 결과 상위권 159명의 성적이 시스템 오류로 10점씩 낮게 나오면 교육부 장관은 어떤 입장을 밝힐까? 자진해서 사퇴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가 159명이 사망했는데,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은 자진 사퇴는커녕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는 곧, 한 사회가 어떤 사건의 비중이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프레시안 :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10대였던 이들이 2022년 20대가 돼 이태원 참사를 겪은 셈이 됐다. 이 같은 집단 트라우마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 같다. 

미류 : 참사에 따른 트라우마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살다가 사회적‧정치적 감각을 갖게 되는 사건이 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당시 10~20대였던 사람들에게 어떤 정치적 감각을 갖게 한 것처럼, 세월호 참사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우리 사회 혹은 정치에 대한 감각을 형성하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다.

트라우마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날 것 같다. 우선은 이태원 참사를 처음 접했을 때 분노했을 수도 있지만, '뭐가 좀 달라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와 같은 무력감도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분노보다는 무력감을 더 크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또 언제 어디서 위험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내가 더 위험해. 내 일자리가 더 불안해. 내 안전이 더 문제야' 같은 피해 경쟁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나'의 문제 혹은 '내'가 겪는 문제가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서로 경쟁해야 되는 상황, 이런 게 더 강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프레시안 : 더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고 피해 경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참사로부터 회복될 수 있을까?

미류 :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동안 어떤 사회를 작동하게 한 구조나 시스템이 붕괴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참사로부터의 회복은, 구조와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인 동시에 무너진 신뢰를 다시 찾아야 하는 일이다.

신뢰는 절대 혼자 만들 수 없다. 타인을 믿을 때, 서로 믿는 관계가 확장될 때 신뢰가 생긴다. 따라서 혼자 안전하려고 하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가 타인을 혹은 사회를 믿을 수 있어야 '내가 안전하다'는 감각이 돌아올 수 있다. 

▲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앞에서 열린 시민추모제. 유가족들이 촛불과 함께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안 된다'는 신호,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프레시안 : 지난해 봄,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을 했다. 그런 투쟁 덕에 법안 발의 15년 만에 처음으로 공청회가 열렸다. 비록 반쪽짜리였지만…. 우리 사회에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는? 

미류 : 차별이라는 사건은 사회적 구조에서 비롯되지만, 그 피해는 개별적으로 겪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차별당했다'고 주장하기보다 그냥 참고 살기를 택한다. 그런 순간, 누군가는 좀 더 싸워볼 수 있게 공적인 역할을 하는 제도가 차별금지법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하면서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차별당했다'고 호소하는데 모두 무시할 경우 혹은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라며 스스로 자책하는 경우 또는 '네가 유난스러운 게 문제야'라고 사회가 말할 때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차별의 구조를 바꾸는 싸움은, 누군가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차별의 구조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것인 만큼 누군가가 먼저 용기를 내고 시작해야 맞설 수 있다. 결국은 우리가 함께 싸우기 위해서라도 누군가 먼저 싸울 수 있도록 법을 통한 보장이 필요하다. 

법 제정이 자꾸 미뤄지는 이유 중 하나는 차별금지법을 차별을 겪는 '일부'의 문제, '소수'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에서 더욱 구조화되고 있는 이 '혐오'라는 문제 때문에라도 법 제정을 더는 늦출 수 없다. 

혐오는 다층적일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법을 만든다고 해서 해소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런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신호는 분명히 필요하다. 단지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떤 집단을 악마화·타자화하거나 특정 권리에서 배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일단 '안 된다'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

뿐만 아니라 차별과 혐오는 먹고 사는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왜 저 사람보다 덜 받아야 해?'라는 물음에 '너 고등학교밖에 졸업 안 했잖아', '너는 여자잖아', '너 아직 청소년이잖아'라는 말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주민이나 성소수자의 경우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런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 지난해 5월 26일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단식투쟁 마무리 기자회견.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임집행위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46일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단식을 했다. ⓒ연합뉴스

"차별의 문제를 '피해의 경쟁'으로 만드는 정치" 

프레시안 : 차별금지법 제정에 큰 저항 중 하나가 성소수자 혐오 문제인데, 종교와 결부돼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미류 : 얼마 전 김진표 국회의장이 저출생 해법을 논하는 자리에서 "동성애·동성혼 치유 회복 운동"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들이 말하는 '병이다' 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내가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가 '다르다'고 지목하는 집단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소수자와 자신이 어떤 의미에서 동료 시민인지 이해를 못 하고 있다.

소수자와 동료 시민으로 마주하고, 그래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핵심 아닐까?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평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정치권부터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프레시안 : 과거에는 평등권 문제를 시혜나 수혜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지금은 '내 것을 빼앗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만들고 있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만 해도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를 '나의 출퇴근 시간 불편을 가중시키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미류 : 차별의 문제를 '피해를 경쟁하는 문제'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장애인들이 이동 못하는 것, 그래 그것도 좀 문제지. 그런데 시민의 불편은 어떻게 할 거야?'라는 인식, 즉 이동권이라는 문제를 시민과 장애인이 대립하는 문제로 치환했다.

지금의 한국 정치가 양산하고 있는 큰 문제 중 하나다. 평등성과 보편성이 아닌 어느 한쪽의 편을 들게끔 편 가르기를 하는 것,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피해가 더 크지. 그렇다고 남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니야'라며 본질을 벗어나 편 가르기 하는 방식, 그게 바로 '이준석 식 정치' 아닌가. 

"윤석열 정부, 젠더 이슈를 '여성 대 남성'의 갈등으로 치환했다" 

프레시안 : 혐오를 말할 때 젠더 이슈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지금 10대들에게는 '페미니스트'가 하나의 욕이 됐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류 : 젠더라는 것은 그 자체로 갈등적 개념일 수밖에 없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역할이 있듯 남성에게도 그에 부합하는 요구가 있다. 이는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나답게' 살고자 하는 바람이든 관계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든 누구에게나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갈등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젠더 이슈를 '여성 대 남성'의 갈등으로 치환해버렸다. '신당역 살인 사건'을 우연히 정신질환을 앓는 남성과, 우연히 그 남성에게 걸린 여성 개인의 문제로 만든 것이다. 여가부 장관은 "신당역 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며 "남여 이중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무총리는 또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에 효과적이고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여성 대 남성'의 문제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프레임이다.

핵심은 '구조'를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구조를 향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폭력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향하는 방식이 됐지? 왜 여성들은 이렇게 쉽게 폭력의 대상이 되는 거지? 왜 여성들은 폭력의 피해를 입어도 사회에 대고 그것을 '폭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지?'라고. 

프레시안 : 역시나 정치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미류 : 활동가 입장에서 보면, 정치권에 기대하는 것도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정부는 미투(#Metoo)와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확장된 성차별 구조에 대한 인식과 문제제기를 쫓아가려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여가부 장관이나 총리의 발언에서 본 것처럼 어렵게 쌓아온 하나의 흐름을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 역시 이런 흐름을 겨우 쫓아왔기 때문에 누군가 역으로 돌리려는 걸 다시 제 방향으로 밀어붙일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 800여개 시민사회단체 연대체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은 지난해 11월 25일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은 정치거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프레시안(한예섭)

"윤석열 정부, 시민을 '피해 호소인'으로 만드는 정치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 또한 젠더 이슈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류 : 윤석열 대통령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은 윤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강조했던 "약자와의 동행"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구조나 시스템이 아닌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진짜' 약자를 분리한다는 전략이다.

반노조 정책도, 단순하게 '노동자라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해'가 아니다. '노동조합은 강자야. 약자는 노조도 구성 못하는 다른 데 있어'라는 의미다. 즉, '네가 개인으로 남아있는 한 국가는 도움을 줄 거야. 그런데 집단을 구성해 무언가를 더 내놓으라며 싸운다면 너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야'라는 것이다. 

범죄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도 '그냥 그렇게 있으면 법무부가 도와줄 거야'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신당역 사건 때 주무부처인 여가부보다도 법무부가 더 적극적이었다. '구조적 차별은 없지만, 법적으로 피해를 구제할 여성들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강력하고 단호하게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윤석열 정부의 여러 가지 개혁은 '개인을 구제하는 방향'에 방점이 있다. 집단적 권리의 실현을 통해서 모두의 권리를 증진하는 것은 철저하게 배제한 채. 따라서 '여가부 폐지'라는 전선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싸움이라고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메시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돼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미국 트럼프 정권의 통치를 '트럼프 월드'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한국에는 윤석열 정권이 만들어 가고 있는 '윤석열 월드'가 있는 것 같다. '윤석열 월드'는 법질서 아래 그 어떤 피해도 입지 않고 굳건하지만, 그 안에서 발생하는 온갖 피해는 모두 개인의 몫이 되는…. 

미류 : 그렇다. 윤석열 정부의 개혁은 구조는 그대로 두고 그 구조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선에서 '구제하겠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을 권리를 가진 시민이 아니라 '피해 호소인'으로 만드는 정치를 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윤석열의 공정'이 'MB의 공정'보다 더 위험한 이유 

프레시안 : 보수 정권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와 윤석열 정부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가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느낌도 들고. 

미류 : 그렇다. 그러나 MB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시기적으로 다르다. MB 정부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지만 한국은 그 피해를 덜 겪으면서 정책 기조가 4대강사업 같은 토목사업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 불안정성이 더욱 높아졌다. 훨씬 더 심각한, 그래서 제대로 된 구조적 재편이 필요한 때다.

프레시안 : MB는 소수 집단의 욕망을 극대화해서 그 소수가 나눠 먹는 방식으로 재편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개개인을 파편화시켜 무력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미류 : MB 역시 '공정의 전도사'였다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MB는 공정을 가이드 혹은 지향으로 이야기했다면, 지금 윤 대통령은 개인의 권리 자격을 묻는 잣대로 공정을 들이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화물연대나 건설노조를 '사업자'라고 하면서 칼을 빼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청소 노동자가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폐기물을 처리해주고 주민들에게 직접 수수료 3만2000원을 받은 일로 징계해고된 데 이어 지방고용청을 상대로 한 실업급여 불인정 처분 소송에서 패소해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게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규칙을 위반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유가 되느냐 하는 문제에서는 상식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규칙의 문제가 되어 버리는 순간 혹은 불법이라고 결론 내리는 순간 정당화된다.

시민단체 회계감사 문제도 비슷한 경우다. 시민단체가 국고보조금을 공익적으로 쓰고 있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사회적 문제다. 그런데 회계 기준에 맞춰 사용했느냐의 문제로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시민단체의 실질적인 평가와는 무관한 일이 된다. 회계 기준은 결사의 자유를 누릴 자격의 잣대가 될 수 없다. 

규격화된 기준으로 잘잘못을 가려 처벌한다면, 결국 우리 사회에 사회적 가치라는 것은 남기 어렵다. 계량화·규격화에 발목이 잡혀 더 나은 삶을 도모할 가능성이 제한당한다는 점에서 '윤석열의 공정'은 'MB의 공정'보다 더 위험한 면이 있다. 

2023년에는 '이상민 퇴진·차별금지법 제정·기후정의' 외쳐야… 

프레시안 : 이렇게 개인을 계량화하고 원자화하는 윤석열 정부의 맞서서 어떤 정치적 요구를 해야 할까?

미류 :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연이어 겪으면서 '국가의 부재'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정말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국가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국가를 원하는지 먼저 제안하고 구체적인 상을 만들어야 한다.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인권과 연관 지어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 번째는 기본이다. 국제인권규약은 인권 실현에 대한 의무를 국가에 지우고 있다. 기본을 지킬 줄 아는 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 책임지는 국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는 방법? 최소한이 이상민 장관 해임이다.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우리가 끌어내려야 한다.

다음으로, 지향이다. '평등'을 조금 더 실질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가의 지향점으로 '자유'만을 강조하며 왜곡하고 있지만, 자유와 평등은 서로 맞물린 개념이다. 근현대사적으로 반공주의 기조를 오래 경험했기 때문에, 자유보다는 평등에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정치 세력도 '대한민국을 평등하게 만들겠다'는 선언을 한 적은 없다. 결국 평등의 의미가 우리 사회의 가치와 지향으로 제대로 된 사회적 선언이 될 때 비로소 실질적 자유도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이후로 숨 고르기를 하며 또 다른 싸움 준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함께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세 번째는, 체제다. 가치가 마련됐다고 해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구조가 절로 갖춰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세계인권선언 제28조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나와 있는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체제 및 국제체제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질서를 만들 것이냐와 관련해 '기후정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 대 자연'으로 인식됐던 문제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터전으로, 그 관계를 어떻게 다시 구조화할 것인가. 산업은 또 어떻게 재편되어야 할까. 이에 맞춘 삶의 양식은 또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이런 체제의 변혁·변형·변화에 대해 토론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 싸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인권'이라는 것이 그냥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한정된 권리가 아니라 '산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언어이자 가이드이자 경험으로 공유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