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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포르노, 웹하드 업체가 정부 농락하고 있다"

[미투 이후 입법 과제 점검] ② 디지털 성폭력 관련 입법


국내 웹하드업체 중 하나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를 운영하고 있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 등 엽기 행각이 드러난 가운데, 이전부터 디지털 성폭력의 온상으로 지적되어온 웹하드업체에 대한 법적인 통제와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더 확산되고 있다. 

'위디스크'와 같은 웹하드업체들은 불법촬영 영상물을 유통시키면서 엄청난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양진호 회장의 수천억 원대 개인 자산도 상당 부분 음란물 유통을 통해 축적했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때문에 웹하드업체들은 성범죄 영상물의 유통을 묵인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저작권이 없는 음란물과 성범죄 동영상 등을 다수 올리는 '헤비 업로더'들에게 돈을 주며 사실상 '고용'해 왔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 '국최신no'? 독버섯처럼 퍼지는 '디지털 성범죄' )

웹하드와 필터링 업체의 유착...일부 업체는 이중 페이지 운영도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업팀장은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미투운동, 법을 바꾸다' 토론회에서 "웹하드 내 사이버 성폭력은 필터링으로 끝낼 수 있다"며 "웹하드와 필터링 업체가 사실상 정부를 농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터링은 저작권이 있는 컨텐츠나 음란 정보 등의 불법 전송을 차단하고 컨텐츠를 선별, 검수하는 기술적 조치를 말하는데, 웹하드업체는 자신들의 웹하드에 올리는 컨텐츠들에 대해 필터링을 하도록 되어 있다. 양진호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경우 필터링 업체 (주)뮤레카를 이용하고 있는데, 이 업체가 양 회장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이다. 웹하드업체와 필터링업체 사이의 유착 관계가 공공연한 업계 비밀(?)인 가운데, 필터링을 거치고도 웹하드업체엔 불법촬영 영상물이 버젓이 올라오고 있다. 김 팀장은 그 실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2017년 6월 21일 웹하드에서 피해촬영물이 얼마나 검색되는지 전수조사를 했다. 케이디스크에는 검색어 '국노'(국산 노출을 의미) 2만8584건, '국NO' 5949건, '국산' 2만9104건, '몰카' 850건, '골뱅이'(여성 성기를 의미하는 은어) 585건으로 피해 촬영물임을 암시하는 게시물이 총 6만5072개 업로드 되어 있었다. 위디스크에서는 '국노' 2416건, '국NO' 992건, '국산' 1026건, '몰카' 166건, '골뱅이' 40건이 검색됐다.

그런데 같은 해 8월 동일한 방식으로 다시 한번 전수조사를 진행한 결과, 케이디스크에서는 '국노' 0건, '국NO' 0건, '국산' 3만1469건, '몰카' 26건, '골뱅이' 649건, 위디스크에서는 '국노' 23건, '국NO' 8건, '국산' 218건, '몰카' 26건, '골뱅이' 49건이 검색됐다.

두달 만에 이렇게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정부의 불법촬영범죄에 대한 대책이 발표되고 감시의 강도가 강해지고 규제의 기미가 보아지 업체들이 촬영물의 수를 조절한 것이라고 보인다."

김 팀장은 "필터링 업체와 웹하드는 이미 4,5년 전부터 완벽한 필터링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필터링업체와 계약만 하고 실제 필터링은 적용하지 않는 등 웹하드업체는 다양한 방법으로 필터링을 피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웹하드 모니터링시 불법행위의 증거를 수집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음란물이 제대로 필터링 된 화면이 나오고, 이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다시 검색하면 피해촬영물과 음란물이 걸러지지 않은 채 판매되고 있는 페이지가 나타난다며 일부 업체들은 이중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고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 9월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지능정보 기술을 활용해 불법영상을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2018년 2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여 불법 영상물을 편집 또는 변형하여 유통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DNA필터링 기술을 개발해 플랫폼에 적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 팀장은 "이처럼 국가가 직접 불법영상물의 모니터링과 삭제에 개입할 의지를 보이자. 웹하드업체들은 '이미 존재하는 필터링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추가 기술을 개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고, '기술 개발을 위해 책정된 예산을 기존 필터링 업체에 주고 정부는 해외 사업자 규제에 신경 쓰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이런 주장이 방송통신심의위 측에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웹하드업체는 과거 '필터링 기술로 웹하드에 업로도, 다운로드 되는 모든 음란물을 차단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해왔는데, 이제 와서 자신들의 과거 주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이 흥미롭다"며 "그렇다면 웹하드업체는 필터링을 하지 않은 잘못을 인정하며 책임을 질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웹하드 수익의 대부분은 피해 촬영물을 포함한 음란물의 유통, 판매로 발생하므로 필터링을 웹하드의 재량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며 "웹하드와 연관된 필터링 업체가 고의적으로 필터링을 하지 않거나, 필터링을 무력화하거나 우회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이런 행위들이 발각되었을 경우 형사처벌을 할수 있도록 정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팀장은 "피해 촬영물은 경찰이 공중 화장실의 몰카를 없애겠다고 단속을 한다고 근절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며 "디지털 성폭력 촬영물은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유통시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웹하드업체 등 피해 촬영물을 유통시키는 행위 자체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 촬영물도 디지털 성폭력 범죄에 포함시켜야  


현재 디지털 성폭력(비동의 촬영, 비동의 유포)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법은 성폭력 특별법 제 14조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인데 이 법은 다양한 디지털 성폭력의 유형을 포괄하기 어렵다. 김 팀장은 1)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가질만한 모습'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 2) 대상을 '다른 사람의 신체'로 한정함에 따라 본인이 본인의 신체를 찍은 촬영물은 비동의 유포되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 3) 촬영과 유포 행위를 분리하지 않고 한 법 조항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 4) 기술의 발전으로 '촬영'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도 '편집' 혹은 '합성' 등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이를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본인이 찍은 촬영물의 경우 채팅 앱을 통해 만난 40대 남성이 10대 여성 청소년에게 대화를 주고 받으며 친분을 쌓은 뒤 '예쁘다, 사랑한다, 니가 보고 싶으니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 등의 말과 함께 여성청소년에게 신체 촬영물을 요구한 사실이 발각됐으나, 해당 남성은 '본인이 찍은 영상인데 무엇이 문제냐'며 발뺌했다는 사례 등을 볼 때 법적인 규제 대상이 들어가야 한다고 김 팀장을 강조했다. 그는 "본인이 찍은 촬영물도 카메라 이용 촬영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개정안이 20대 국회에만 6차례 발의되었는데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며 조속한 법 처리를 촉구했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내 성폭력 폭로로 불붙은 미투(#METoo) 운동 이후 130여 개의 미투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많은 법이 제출됐다는 것은 미투운동에 대한 관심과 그 영향력이 컸다고도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성 인권이 그만큼 법적인 사각지대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련 입법은 우후죽순 쏟아졌지만, 지난 8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재판에서 1심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법과 제도의 변화는 현실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투 운동 이후 입법 과제를 점검하기 위한 토론회('미투 운동, 법을 바꾸다')가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다양한 입법 과제를 1)강간죄의 재구성과 피해자 보호 입법 2) 디지털 성폭력 관련 입법 3) 여성이 안전한 일터와 학교를 만들기 위한 입법 등 3개의 주제로 나눠 보도할 예정이다. 


( 첫번째 기사 : ① "아동 성추행, 무죄 만들어드립니다" 광고 난무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