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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추행, 무죄 만들어드립니다" 광고 난무한 세상

[미투운동 이후 입법 과제 점검] ① 강간죄의 재구성과 피해자 보호 입법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내 성폭력 폭로로 불붙은 미투(#METoo) 운동 이후 130여 개의 미투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많은 법이 제출됐다는 것은 미투운동에 대한 관심과 그 영향력이 컸다고도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성 인권이 그만큼 법적인 사각지대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련 입법은 우후죽순 쏟아졌지만, 지난 8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재판에서 1심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법과 제도의 변화는 현실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투 운동 이후 입법 과제를 점검하기 위한 토론회('미투 운동, 법을 바꾸다')가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다양한 입법 과제를 1)강간죄의 재구성과 피해자 보호 입법 2) 디지털 성폭력 관련 입법 3) 여성이 안전한 일터와 학교를 만들기 위한 입법 등 3개의 주제로 나눠 보도할 예정이다. 편집자



▲ 1일 '미투운동, 법을 바꾸다' 토론회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국회의 빠른 관련 법안 처리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전홍기혜)



최은순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미투 운동 이후 가장 시급한 것은 '비동의 간음죄'의 신설'이라면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제 8차 한국 정부 심의 최종 견해에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현재 통과된 미투 관련 법들은 예산이 들지 않고 저항이 적은 법안부터 처리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계위력으로 인한 간음죄의 법정형을 상향했는데, 안희정 사건의 1심 판결을 보면 그간의 문제는 재판부가 일반인을 상대로 한 위계위력으로 인한 간음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었다. 따라서 법정형 상향은 재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다음 4가지 경우 중 현행 법상 성폭력은? 비동의 강간.추행죄 신설이 필요"

"여러분께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첫째,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으나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수준이 아닌 폭행이나 협박이 동원된 성폭력, 둘째, 고용 관계는 아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심리적인 위계가 존재할 수 있는 관계인 의사-환자, 교사-학생 사이의 성폭력, 셋째, 폭행이나 협박은 없었지만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이미 공포에 사로잡혀 있어서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해진 성폭력, 넷째, 폭행이나 협박은 없었지만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가해진 성폭력.

다음 중 현재 한국에서 법원으로 갔을 경우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경우는 어느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네 가지 경우 모두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실히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정이명화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미투대응팀)는 이런 이유에 대해 "현행 형법상 강간죄가 '최협의의 폭행.협박(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폭행.협박)'이 필요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며 "이는 다양한 유형의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행위를 성범죄로 처벌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이 변호사는 "미투 운동 이후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적 침해를 범죄로 구성함으로써 성폭력 법체계를 개선할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었으며, 현재 한국 형법의 기준이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성범죄를 판단하는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됐다"며 "물리적인 폭행.협박을 수반하지 않은 가운데 이뤄지는 강제적인 성관계로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폭행.협박을 구성 요건으로 하지 않는 비동의 강간.추행죄의 신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비동의 간음죄' 신설의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은 국회에 8건의 입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정이 변호사는 바람직한 입법 방향으로 1) 현재 '강간과 추행의 죄'를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의 죄'로 변경 2) 비동의 구성 요건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라는 문언으로 규정 3) 위계.위력 및 폭행.협박을 각각 가중적 구성요건으로 규정 등 3가지 핵심적 내용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강간죄(형법 제297조)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1)상대방의 동의 없이 사람을 강간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저한다. 2)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을 강간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3)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사람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유사강간(형법 제297조의 2), 강제추행(제298조),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제299조)도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행한 행위에 대해 위계.위력과 폭행.협박을 각각 가중 요건으로 두고 처벌하자고 제안했다. 

성폭력 가해자 전문 변호사 집단까지 존재...피해자 보호 입법 필요

미투운동으로 크게 드러난 문제 중 하나가 피해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너무나도 미비하다는 점이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가 역으로 무고죄, 명예훼손죄 등으로 역고소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형사고소한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피의자/피고인이나 검사로부터 역고소를 당하고 있는 현실이며, 역고소의 유형은 무고죄, 위증죄, 명예훼손죄, 협박죄, 모욕죄, 공갈죄, 강요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죄, 업무방해죄, 그리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가해자들은 역고소를 하나의 권리로 여기고 있는 상황이며 심지어 법원 근처 지하철역에 '아동 성추행을 무죄로 만들어드립니다'라는 광고지가 붙을 정도로 가해자 전문 변호사들이 포진해 있고 이미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현재 대검찰청의 '성폭력 수사 매뉴얼'에 성폭력 사건의 경우 수사가 종료되어 최종 처분이 가능할 때까지 무고, 명예훼손 고소사건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성폭력 사건의 항고가 진행 중일 경우에도 무고죄 수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수사 중단을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으며, 성폭력 고소 건이 항고나 재항고 등 절차가 진행 중일 때까지는 역고소의 수사가 유예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특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성폭력 뿐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각종 내부고발을 크게 위축시키는 법"이라며 "성폭력 피해자나 내부고발자가 형사 범죄의 피의자, 수사 대상이 되어 또 다른 피해와 고통을 겪게 된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근본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며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두고 있지 않으며,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와 2011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 역시 한국 정부에 이 법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안지희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원회)는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신설을 제안했다. 이번 안희정 사건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피해자에 대한 극심한 '2차 가해'와 이로 인해 형성된 부정적인 여론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으로 규제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안 변호사는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하여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피해자 본인에게 피해사실 등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말하거나 그 확인을 구하는 행위, 피해자와 관련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거나 객관적 사실이 아닌 사실을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알리는 행위, 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피해자와 관련한 사실 또는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 등을 처벌하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성폭력 특별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