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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사회로 인한 불행감이 당신에게 전가되고 있다

[인터뷰]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저자 박미라


"저주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미래의 행복은 그 어느 것으로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성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부자가 되어도 문득 닥친 병과 죽음, 사고 등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 자식을 길러도 그 아이가 또 어떤 미래를 맞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것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성숙뿐입니다. 내적 성숙은 노력한 만큼 가능해지고, 성숙해질수록 행복해집니다."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박미라 지음, 나무를심는사람들 펴냄)라는 책 제목을 보고 대부분 흠칫할 것이다. 자신 있게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 사회는 특히 나를 사랑하기 힘들게 만드는 사회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항상 부족한 나를 채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주어진다. 

"자기사랑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음공부를 하는 현장에 있다 보니까 자기 비난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자기 비난을 많이 하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고, 자기 비난 속에서는 자기 문제를 직면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를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비난을 하기도 하지요. 

특히 젊은이들이 자기 비난이 더 심했습니다. 사회가 주는 게 있을 것입니다. 부모들이 경제적 차이로 성공과 실패가 나뉘는 걸 다 맛봤고, 좌절감을 너무 많이 느끼면서 내 자식만은 그렇게 살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혹독하게 자식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면 나를 사랑하는 게 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나를 채찍질하는 게 나를 사랑하는 거라고 알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길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지요. 이런 상태의 젊은이들이 자기 방에 칩거하게 됩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잘 나가는데 나는 되는 거 하나 없는 한심한 애'라고 부모들이 질타하고, 세상은 너무 무섭고, 가장 안전한 게 내 방이니 스스로를 방에 가둬버립니다. 그리고 더 무기력해지고, 더 우울해집니다. 이런 경우를 많이 보게 되니 자기사랑에 대해서 강조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 박미라 대표를 1월 31일 만났다. 박 대표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는 '자기사랑'은 요즘 심리학 서적들에서 유행처럼 거론되는 자존감보다는 조금 더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개념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종종 에로스로 번역됩니다. 에로스는 본질적으로 연결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사랑은 자신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자 할 때, 진정으로 연결되기를 원할 때 필요한 것은 먼저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기사랑도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자기사랑을 위한 첫걸음이다. 

"그 과정이 괴로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추한 모습을 갖고 있어도 비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수긍하는 것이 자기사랑입니다."

자신을 직면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그저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자는 수동적인 자세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문제를 알아야 사회의 문제와 구분할 수 있다. 

"자신의 고통을 내려놓고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야, 이런 자각이 늘어서 사회와 싸울 수 있는 힘들이 모인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국에서 사회 구조가 개개인의 불행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회로 인한 불행감을 개인들에게 전가시킵니다. 구성원들이 자기 탓을 하고 있으면 큰 조직은 너무 좋죠. 개개인을 불행으로 빠트리는 문화에서 변화는 개인이 한 걸음씩 나가야 가능해지는데 그게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이걸 하지 않으면 구조 속에 편입되고 이용당하고 소모되는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로 인한 불행감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한국 사회"


박 대표는 특히 청년층에게 자신의 문제를 직면해 사회와 분리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사회는 이들을 어릴 때부터 스스로의 욕구와 개성을 죽이도록 강요해왔기 때문이다. 


▲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박미라 지음, 나무를심는사람들 펴냄). ⓒ나무를심는사람들

"조금 심하게 말해서 자기 욕구를 계속 줄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살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너의 욕구를 모두 참고 대학, 성공을 위해 매진하라'고 강요했습니다. 10대 때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내 개성을 알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내 욕구를 다 죽이며 '입시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고통을 호소합니다. 나는 심리상담을 하면 젊은층은 분노조절이나 감정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 올 줄 알았는데, 20-30대 청년들이 와서 다 '내 감정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우울해지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오히려 분노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은 중년 남성들이더라구요. 

감정을 억압하면 심리적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소모되면서 우울증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부모들은 '노력하면 되는데 왜 더 노력하지 않냐'고 닦달합니다. 나의 상태를 인정하고 내 감정을 발견해 나가야 하는데, 내 욕구는 다 제거하고 남들이 보기에 좋은 것만 내 것이라고 해야 하는 상태로 청년들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일차적으로는 다그치는 부모의 문제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부모를 만든 사회의 문제다. 우리 모두가 획일적인 교육제도와 기회의 불균형, 부의 불평등한 분배, 상명하복 문화 등의 피해자다. 부모세대의 깨달음이 매우 중요하지만,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에 부모세대의 깨달음을 통해 한국 사회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 박 대표는 회의적이었다.


"사실 부모들이 변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자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인생이 자식과 관련된 것 말고 없게 되면, 자기 인생을 살라는 게 죽으라는 얘기로 들린다고 합니다. 

내가 부모 교육을 통해 계속 강조하는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희생적이지 않아도 되고, 생후 3년 동안 육아에 전념할 필요 없고, 조기 교육도 필요 없고, 시간이 남는다면 여러분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하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건 부모들입니다. 

안타깝지만 부모세대의 자기 성찰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에, 개인의 의식 수준은 대체로 사회가 가진 의식 수준과 맞물려서 결정된다고 봅니다. 사회의 의식 수준이 낮아도 뛰어난 일부의 사람이 있지만, 한 사회가 결정해주는 것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였나요? 물질적인 성공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사회고, 그 물질적 성공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만 얻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우리 사회의 주류의 삶이 그런 것이었고, 그런 물질적 부를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사회였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이제 와서 '내가 살아온 게 다 거짓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렵습니다. 

저는 오히려 촛불혁명 등을 통해 사회적 의식도 크게 성장한 청년세대가 부모세대를 극복하고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부모세대의 각성, 기대하기 힘들다청년세대가 극복하고 나가야"


박 대표는 책에서 자기 이해를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5가지 단계'를 제시했다. 나를 이해하기, 비난 금지, 한계 알기, 선택하고 감당하기, 틀에서 벗어나기. 또 이 과정에서 죽도록 미운 누구에게 부치지 않을 편지 쓰기, 공부, 다이어트, 용기, 너그러움, 인기, 취업 등 간절히 원하고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은 일에 대한 목록을 만든 뒤 이들에게 작별 인사 고하기, 살면서 괴로운 일을 만났을 때 4일간 연속해서 아무 형식이나 의도 없이 자신의 고민을 주제로 15분 이상 글쓰기 등 도움이 되는 글쓰기 팁을 주기도 했다. 


"글쓰기의 좋은 점은 본인이 쓰다가 자기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양립된 사회입니다. 자기 병에 대해서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진단받아야 하는 시대인데, 분화된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일입니다. 타자화된 개인은 계속 무력해지니까요. 글쓰기는 혼자도 할 수 있고, 여럿이 같이 쓰면 더 잘 써지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내 문제를 내가 발견하고 해답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 최초 페미니스트 잡지인 <이프>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던 박 대표는 이후 '심신통합치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06년 <한겨레>에서 소설가 김형경 씨와 함께 상담코너 '형경과 미라에게'를 시작으로 10년 이상 심리상담과 글쓰기를 통한 마음 치유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천만번 괜찮아>(한겨레출판 펴냄), <치유하는 글쓰기>(한겨레출판 펴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휴 펴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