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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돈정치' 생태계를 깨버리겠다"

[인터뷰]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만 27세의 서울시장 후보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한국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당 후보다. 인물 중심으로 선거 유불리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한국 정치 풍토에서 2012년 3월 창당한 녹색당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2014년),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2017년 2월), 현재 통합을 모색하는 국민의당(2016년)과 바른정당(2017년), 원내에 진출한 유일한 진보정당인 정의당(2013년)보다도 역사가 길다.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지난해 3월 30세의 예시 클라버 대표가 이끄는 녹색당이 14석(전체 의석 중 9.1%)을 확보했고, 지난 10월 뉴질랜드에서는 23세의 클로에스워브릭은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녹색당은 20대의 여성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는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녹색당은 지난 26일 당원 찬반투표로 신지예 후보를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했다. 신지예 후보는 사회적기업 '오늘공작소'를 운영하는 청년 사회적기업가이며, 지난 20대 총선에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며, 현재 녹색당 서울특별시당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박원순 시정, 반일보 했을 뿐이다" 


신지예 후보는 지난 29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27세 비혼 여성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가 '이색적'으로만 다뤄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가 후보로 확정됐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애송이가 뭘 알겠냐', '좀더 경험을 쌓고, 공부하고 나와라'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제가 선거에 나온 이유는 '30년 후의 다른 서울'을 꿈꾸기 때문이다. 현재 자유한국당 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개발중심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정치, 다른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이 '나중'이 아니라 '지금' 선거에 나와서 다른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신 후보는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을 만들기 사업' 등 기존의 토건 중심 정책과는 다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에 대해 "기존 정치인에 비해 반일보한 측면이 있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을 공동체 사업이나 미세먼지 대응책을 보면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주변부만 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을 만드는 것은 주거권의 문제다. 현재 서울시민은 평균 2.3년에 한번 이사를 한다고 한다. 한 집, 한 동네에 오래 살아야 개인이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주거권은 쏙 빠진 상태에서 서울시의 지원 사업을 통해 마을을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미세먼지 대책도 자동차 2부제, 석탄화력발전 저감 정책 등은 쏙 빼놓고 '안전한' 대중교통비 지원만 하고 있다.  

박원순 시정 하에서 동부간선도로,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정책 등 대규모 토건 사업은 계속 되고 있고, 강남 집값은 여전히 뛰고 있다. '서울로' 사업도 임기 중 본인의 트로피를 세우기 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이런 정책들은 대안이 아니라 여전히 개발중심주의에 기반한 정책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이 서울인권헌장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 문제 때문에 한 발 물러선 것도 매우 실망스러운 지점이다." 

신 후보는 현재 서울의 가장 큰 문제에 대해 '부동산 문제'를 꼽았다. 

"대다수의 서울시민이 자기 삶을 집주인에게 담보 잡혀 살고 있다. 개헌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헌법상에는 세입자의 권리가 없다. 독일 베를린 사례를 보면 강력한 전월세 상한제만 있어도 세입자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정치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들이 갖고 있는 땅이 여의도 면적의 1.3배라고 한다. 정치인 상당 수가 다주택자이거나 건물주 출신이며, 부동산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부동산 정책이 바뀔리 없다." 

"청년, 여성, 성소수자는 '나중에'?낡은 시각이다" 


신 후보는 장기적으로는 과포화화된 서울을 '작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소유하지 않고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전월세 대책, 개발사업에 대한 시민심의제 도입 등), 초강대도시보다 건강한 도시(미세먼지 관련 차량2부제 도입, 청년 기본소득 등),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등한 도시(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반려동물 관련 대책)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런 서울의 미래상은 그가 대표하려는 20-30대 청년 시민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청년세대는 한국의 복지시스템 자체가 내 삶을 지탱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내 삶은 내가 돌봐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사회로 내몰려 왔다. 1997년 IMF 사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10-20대 때 겪은 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항상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할 것'을 요구해왔다. 너희가 어리니까, 너희가 소수니까, 너희 문제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너희에게까지 돌아갈 몫이 없으니까, 너희가 먼저 희생해.  

이런 메시지가 다시 반복된 것인 최근 가상화폐와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둘러싼 논란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에 있어 청년들이 가장 분노한 지점은 여자 하키팀을 택했다는 것이다.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려 당사자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희생을 요구하는 게 너무 뻔한 접근 방법이었다.   

지금 당장 희생당하고 있는 소수자, 약자의 문제는 '나중'으로 돌리고 '전체'만을 강조하는 정치적 감각으로는 미래세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4인 선거구제는 자한당과 공조하는 민주당" 


신 후보와 녹색당은 2016년 총선을 치루면서 "돈의 중요성을 너무 많이 느꼈다"고 한다. 신 후보는 "우리 선거법은 돈이 없으면 선거 캠페인이 너무 어려운 이상한 선거법”이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녹색당은 선거법 개정 운동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녹색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기존 정당과 차별을 보이겠다고 한다. 

"정치가 기득권을 가진 소수 엘리트들의 스포츠처럼 어겨지는데 보통 사람들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고 싶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때 샌더스 후보가 '금권정치'를 깨겠다며 소액 후원자들을 모아 선거를 치뤘다. 녹색당도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1만 원 후원' 캠페인을 통해 선거 기탁금 등 선거 비용을 마련할 계획이다."


녹색당은 서울과 제주에서 광역단체장 후보를 낼 계획인데, 선거기탁금(5000만 원)을 포함한 선거비용 대부분을 소액후원으로 충당하고 우선 예비후보 기탁금 각 1000만 원 씩, 2000만 원을 소액후원을 통해 마련할 생각이다. (☞ 녹색당 홈페이지에서 후원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필요 이상의 고액기탁금을 포함해 돈 있는 자들만이 정치할 수 있는 한국 정치의 장벽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선거자금 모금에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신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가 진보정당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는 현재 '양당제'로 굳어져가고 있는 한국 정치 흐름을 깨야지만 '소수 엘리트들의 기득권 정치' 구조를 흔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의회 4인 선거구'를 늘리는 것에 대해 자유한국당만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이 조금 더 한국정치에 일조할 생각이 있다면 자신들의 '파이'를 포기하더라도, 4인 선거구를 늘리는데 동조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한국당과 공조를 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는 좋은 정치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이제는 다양한 시민들을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들이 공존하는 새로운 정치 생태계가 필요하고, 시민들께서 함께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